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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사건 개요
이 사건은 도이체 은행과 체결한 석유 수입가격 위험회피 계약(이하 ‘Hedging 계약’)상의 지불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시행된 스리랑카 대법원의 지급정지 명령, 중앙은행의 조사 등의 행위가 투자협정 상의 수용에 해당하고 공정․공평 대우 의무 위반이라고 판정된 사건이다.
청구인 도이체 은행은 2008년 7월 스리랑카 국영 석유회사(CPC)와 석유 수입가격 위험 회피계약 (Hedging 계약)을 체결하였다. 2003년 1월 당시 국제 석유 가격은 28불이었던 것이 2008년 7월에는 130불까지 치솟은 결과, 석유 수입국인 스리랑카는 석유 가격 상승으로 인해 심한 외환 압박을 받게 되자 중앙은행은 CPC에 Hedging 계약을 체결할 것을 권고하였고, 의회도 2006년 10월 Hedging 계약을 체결하기 위한 내각 검토 회의를 설치하였다.
2008년 체결된 Hedging 계약의 요지는 석유 가격이 배럴 당 112불을 넘어 설 경우 월 평균 석유 수입 가격과의 차액을 도이체 은행이 스리랑카에 지급하고, 112불 이하로 떨어질 경우 월 평균 석유 수입가격과의 차액을 스리랑카가 도이체 은행에게 지급하는 것이었다. 스리랑카가 이 계약으로 이익을 보기 위해서는 국제 석유가가 112불 이상을 유지해야 했었는데 스리랑카의 예측과 달리 국제 유가는 계약 체결 직후부터 떨어지기 시작하여 스리랑카는 2008년 9월 도이체 은행으로부터 3만 불을 수령하였을 뿐 10월에는 160만 불, 11월에는 450만 불을 도이체 은행에 지급해야 했다.
2008년 11월 26일 CPC는 체결 권한이 없는 Hedging 계약을 체결하였고 해당 금액을 지불할 권한이 없으며 계약 자체가 도이체 은행에 유리하게 구성된 사악한 계약이라는 시민 권리 청원이 스리랑카 대법원에 제출되었다. 권리청원이란 시민의 핵심적인 기본권이 침해되었을 경우 대법원에 제출할 수 있도록 스리랑카 헌법에 기재된 청원 제도이다. 11월 28일 대법원은 이 청원에 대한 임시명령을 발동하여 도이체 은행에 대한 지급정지, CPC 사장 직무정지, 석유부 장관 직무정지 권고, 석유 직접 구매(Hedging 계약 불이용) 등을 지시하였다. 2008년 11월 13일 스리랑카 중앙은행은 Hedging 계약이행 과정 상 도이체 은행이 규정과 절차를 준수하였는지 여부에 대한 조사를 개시하였으며 2009년 1월 도이체 은행의 규정 위반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2008년 12월 스리랑카 금융위원회는 각 은행에 CPC의 Hedging 계약과 관련한 대외 지급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각 은행에 하달하여 도이체 은행은 Hedging 계약상 수령해야 할 금액을 받지 못했다. 2008년 12월 도이체 은행은 CPC의 계약 위반을 근거로 Hedging 계약을 종료한다고 통보하고 미수령 금액이 6000만불에 달한다고 스리랑카에 통지하였다.
도이체 은행은 스리랑카의 대금 미지급 행위는 독일-스리랑카 투자협정상의 수용에 해당하며 공정․공평 대우 의무 위반이라고 주장하면서 2009년 2월 ICSID 중재를 신청하였다.
나. 주요 쟁점
1) 관할권
스리랑카는 Hedging 계약이 투자협정 상의 투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협정 1조339]에 예시된 투자의 양태 중 가장 근접한 것이 c) 대금청구권인데, 문안상 투자와 결부된(associated with an investment) 대금 청구권만이 투자에 해당하고 Hedging 계약은 따로 결부되어 있는 투자가 없으므로 투자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판정부는 투자협정 제1조는 ‘모든 종류의 자산’이 투자라고 정의하고 있는바, Hedging 계약은 경제적인 가치를 갖는 도이체 은행의 법적 자산이므로 투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투자와 결부된다는 문안은 해석상 ‘대금청구권’을 수식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가치를 갖는 모든 의무의 이행에 관한 청구 (claims to any performance having an economic value)’를 수식하는 것이며 Hedging 계약은 이에 부합하는 청구라고 보았다(판정문 284-286).
스리랑카는 투자란 투자 유치국 영토 내에 이루어져야 하나 도이체 은행과의 Hedging 계약은 싱가폴 지점과 주로 협상하였고 계약서 내에 준거법과 법정이 영국으로 적시되어 있으므로 영토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주장도 제기하였다. 판정부는 국제 주요 은행은 전세계적으로 일체가 되어 운영되므로 특정 서류 작업을 특정 지점에서 수행했다는 것이 해당 투자가 그 지점 소재국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하였다. 런던이 국제 금융 중심지인 관계로 다수의 국제 금융 계약이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체결되므로 이 사실이 이 사건 투자의 영토성 충족 여부와는 무관하다고 보았다. 중재 판정부는 도이체 은행이 Hedging 계약대로 스리랑카에 지불한 금액이 있으며 이는 스리랑카에서 발생한 활동과 연계되어 있고 스리랑카 경제에 자금을 공급한 것이므로 투자의 영토성 요건은 충족된 것이라고 결론 지었다(287-292).
ICSID 협약상의 투자 해당 여부에 대해 판정부는 도이체 은행이 계약 체결을 위해 전문 지식, 인력을 동원하였고 실제 3만 불을 스리랑카에 지불하였으므로 투입성 요건이, Hedging 계약은 교섭기간이 2년, 계약 기간 자체는 1년이어서 이런 종류의 투자에 통상적인 기간이 소요되었으므로 기간성 요건이, Hedging 계약의 성질 자체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분쟁이 제기된 사실 자체가 위험성의 존재를 나타내는 것이므로 위험성 요건도 모두 충족되었다고 설명했다. 판정부는 기여성 요건에 대해서는 충족 여부가 주관적이고 투자 요건으로 보아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견해를 밝히면서도 Hedging 계약이 스리랑카의 국가 이익을 위해 고안, 시행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밝혀 기여성 요건도 충족한다는 점을 시사했다(297-307).
스리랑카는 Hedging 계약이 통상적인 상업 거래 또는 우발 채무에 해당하므로 투자가 아니라는 의견도 개진하였으나 판정부는 내각 검토 회의를 거쳐 스리랑카 최고위층의 재가를 받고 스리랑카 국가 이익 증진을 위해 시행된 계약이 단순한 상업 거래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논설하였다. 우발 채무 주장에 대해서도 국제 회계 기준의 정의상 증권, 파생 상품에서 발생하는 미래 수익이나 손실은 재무 자산으로 분류되지 우발 자산/채무로 분류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수용하지 않았다(308-313).
스리랑카는 CPC가 자신의 권한을 초고하여 Hedging 계약을 체결하였고, Hedging 계약은 본질적으로 투기이므로 스리랑카 국내법상 성립할 수 없는 무효 계약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으나 판정부는 스리랑카가 CPC의 월권 행위임은 증거로서 입증하지 못했고 Hedging 계약은 위험 회피를 위해 광범위하게 행해지는 재무 행위로서 투기라고 볼 수는 없으므로 투기가 CPC 권한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판정부가 굳이 심리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344-346). 이상의 검토를 토대로 판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관할권이 있다고 판시하였다.
2) 공정․공평 대우
중재 판정부는 스리랑카 대법원이 청원을 접수한 후 48시간도 안 되는 시간 내에 당사자의 소명도 청취하지 않고 매우 복잡한 계약 서류도 생략한 채 청구인에 대한 일체의 지급금지 명령을 내린 점은 투자협정상의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 의무 위반이라고 판정하였다. 중앙은행은 외환 보유고가 충분치 못한 상황에서 CPC의 대규모 달러화 지급 요청이 이례적이어서 감사를 개시하게 되었다고 하였으나 판정부는 이미 국제 석유 가격이 하락하여 외환 사정은 다소 나아지고 있었고 CPC의 Hedging 계약에 따른 지급 의무는 이미 중앙은행도 인지하고 있었다고 지적하며 감사 개시 목적이 석연치 않다고 보았다.
제출된 증거상 중앙은행장은 감사 개시 전에 이미 CPC의 대금 지급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후 감사가 한 달 이상 지속되었다고 하면서, 이런 종류의 감사가 통상 매우 방대한 문서 검토가 필수적임을 고려할 때 아무 문서 기록이 없다는 설명은 수긍할 수 없다고 일축하였다. 판정부는 2008년 12월 금융위원회의 지급 금지 명령도 당사자인 도이체 은행에게는 사전에 통지되지 않아 항변의 기회도 부여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스리랑카의 일련의 조치는 도이체 은행에게 고액의 Hedging 계약상의 지불금을 건네지 않기 위해 사전에 공모, 시행된 것으로 판단되므로 자의성, 불투명성에 비추어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474-491).
3) 수용
청구인의 수용 주장 심리에 앞서 판정부는 수용은 피수용 자산에 대한 소유주의 권리 박탈 또는 행사 방해를 필수 요소로 하지만 반드시 경제적 손실을 수반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적시했다.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 수용도 있을 수 있으며 경제적 손실은 향후 수용에 대한 보상액 산정 시 주로 고려해야 할 요소이지 그 자체의 존부가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해했다. 그러나 청구인에게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판정부는 대법원의 2008년 11월 28일 임시 명령, 12월 16일 중앙은행의 지급정지 명령은 Hedging 계약상의 청구인의 채권을 수용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판정하였다. 스리랑카의 조치는 청구인의 채권의 경제적 가치를 박탈한 것이며 11월 28일 이후 대법원, 중앙은행 등 관련 기관의 긴밀한 협의와 공모 아래 시행된 수용 조치일 뿐 아니라 그 의도와 과정이 권한 남용, 불순한 동기, 심각한 절차 위반, 악의로 점철되어 있다고 비난하였다. 특히 중앙은행에 대해서는 당초 CPC에게 Hedging 계약 체결을 권유하고 도이체 은행을 상대역으로 주선까지 해주었다는 점을 들어 통박하였다. 스리랑카는 대법원이나 중앙은행의 법적인 규제 행위라고 항변하기도 하였으나 독립성이 부족한 규제 기관이 금전적인 동기에서 개시한 불법적인 수용이라고 단정지었다(520-525).
다. 평가 및 해설
1) Hedging 계약 체결 당시의 상황
스리랑카가 Hedging 계약을 체결한 시점은 2008년 7월, 2007년초부터 비정상적으로 급등하던 국제 유가가 최고점에 달한 시기였다. 유가는 2008년 9-10월 이후 폭락하였다. 당시 원유價 급등 추세는 수요, 공급 상황에 부합하지 않고 생산 전망과도 어긋나는 것이어서 국제 금융 자본의 투기설이 비중있게 제기되었다.
스리랑카와 같은 작은 나라가 국제 유가의 전망을 비교적 정확하게 내릴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을 것이다. 급등 추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국제 금융 기관의 전망을 믿고 나름대로 자구책을 강구한 것이 Hedging 계약의 체결이었다. 당시 국제 금융 기관, 투자 은행 등은 유가가 배럴당 200불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하였다.
만일 당시의 유가 급등이 항간에서 의심하는 대로 투기 세력의 소행이라거나, 국제 금융 기관 자신들이 중요한 투자자로서 유가 매매를 통해 가격 변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운데 스리랑카와 Hedging 계약을 체결한 것이라면, 향후 유가 전망에 대해 스리랑카와 Deutsche Bank 중 어디가 더 신빙성 있게 예측할 수 있었을까? 국제 중재 제도는 외국인 자본을 유치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있는 개도국이 사법 주권을 일정 부분 제약하는 대신 외국인 투자자에게 보다 우호적인 투자 환경을 제공하여 그들의 자본을 유치하려는 타협적인 제도이다. 감정이 없는 법으로 규율되는 제도이므로 때로는 당사자의 딱한 처지를 배려할 수 없는 한계가 노정되기도 한다. 이 사건이 그 예일 것이다.
2) 투자 범위의 확대
경제가 발달하고 국가 간 자본 및 자산 이동이 활발해져 감에 따라 투자의 범위는 꾸준히 확대되어 왔다. 기술 발전과 함께 새로운 경제 현상이 등장하고 새로운 영업 방식과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투자협정은 투자의 범위를 확장적으로 기재하는 추세이다. Hedging 계약도 이러한 경제 영역과 활동의 확대와 무관하지 않다. 투자 분쟁에서 쟁점이 된 대상이 투자협정상의 투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준거가 되는 당사국 간 투자협정의 투자 정의를 적용하면 판단할 수 있으므로 판례 간 법리적 대립이나 판례 축적에 의한 법리 정립이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이 사건 판정부와 마찬가지로 해당 투자협정의 규정을 적용하여 투자에 해당한다고 판단된 특별한 자산으로는
Fedax vs. Venezuela 사건(ARB/96/3)에서는 약속어음이 투자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되었으며 Bayindir vs. Pakistan 사건(ARB/03/29)에서는 공사 개시 전의 준비(엔지니어 교육, 훈련, 장비와 인력 현장 반입, 보증금 기탁)도 투자로 인정되었다. OKO, SAMPO, VTB vs. Estonia 사건(ARB/04/6)에서는 은행 대출이, Saipem vs. Bangladesh 사건(ARB/05/7)에서는 중재를 신청하고 판정을 이행받을 권리가 투자로 인정된 바 있다.
투자협정상의 투자 정의에 관한 ICSID 판정을 종합한 해설은 Alasdair Ross Anderson et al vs. Costa Rica 사건(ARB(AF)/07/3)에 수록되어 있다. 투자의 본질적 속성 보유 여부를 기준으로 ICSID 협약상의 투자에 해당하는지를 심리한 ICSID 판정을 종합한 해설은 Salini vs. Morocco 사건(ARB/00/4)에 정리하여 두었다.
339] 1. The term investments comprises every kind of asset, in particular: a) ……, b) ….., c) claims to money which has been used to create an economic value or claims to any performance having an economic value and associated with an inves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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