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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 and Maritime Boundary (Cameroon/Nigeria) 사건(Cameroon v. Nigeria, 2002. 10. 10. 판결) 본문

Land and Maritime Boundary (Cameroon/Nigeria) 사건(Cameroon v. Nigeria, 2002. 10. 10. 판결)

국제분쟁 판례해설/국제사법재판소(ICJ) 판례 2019. 10. 16.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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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사건 개요 및 배경

 

     이 사건은 카메룬과 나이제리아 간의 국경 및 해양 경계를 카메룬의 청구에 의거하여 ICJ 가 획정한 사건이다. 1 차 대전 종전 후 패전 독일의 아프리카 식민지는 프랑스와 영국이 위임통치하게 되었다. 프랑스 식민지장관 Henry Simon 과 영국 외무성 차관 Milner 은 1919 년 7 월 Milner-Simon 선언을 채택하여 양국간 위임통치령의 경계를 개괄적으로 획정하여 나이제리아는 영국, 카메룬은 프랑스가 관할하게 되었다. 1930 년 1 월 영국의 나이제리아 총독 Graeme Thomson 과 프랑스의 카메룬 총독 Paul Marchand 는 보다 정확한 경계를 획정하기 위해 Thomson-Marchand 선언을 채택하였으며 이 선언은 1931 년 1 월 주영 프랑스 대사 A. de Fleuriau 와 영국 외무성 장관 Arthur  Henderson 간의 외교 공한 교환 형식으로 조약화되었다. 2 차 세계대전 후 영국과 프랑스의 위임통치는 국제연합의 신탁통치 제도로 전환되어 1919 년 7 월 Milner-Simon  선언 상의 기존 경계가 국제연합 총회에서 인정되었다. 양국은 1960 년 독립하였다. 

 

     1964 년 5 월 차드湖 연안 4 개국(나이제리아, 카메룬, 차드, 니제르)은 차드 지역관리위원회를 신설하는 협정을 체결하여 수자원 활용 및 관리에 관한 업무를 위임하였다. 담당 업무는 4 개국 합의 아래 추후 확대되어 경계 및 안보 문제까지 포괄하게 되었고 분쟁 해결 기능도 담당하게 되었다. 차드호에서의 나이제리아와 카메룬의 국경은 1919 년 7 월 Milner-Simon  선언상의 경계를 수용하였고 차드호 관리 위원회도 이를 인정하였다. 나이제리아와 카메룬 국경이 대서양과 만나는 해안 지역에는 Bakassi 반도라고 하는 작은 지역이 있었다. 1884 년 9 월 영국은 당시 이 지역에 거주하던 추장들과 보호 조약을 체결하여 이 지역은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1차 세계대전 직전 영국과 독일이 체결한 국경 획정 조약(이하 1913 년 영독 조약)에 따라 Bakassi 반도는 독일령이 되었다. 1960 년 독립 후 양국은 Bakassi 반도에 대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였다. 나이제리아와 카메룬은 1971 년 4 월 양국간 해양 경계를 폭 3 해리 범위에서 일단 합의하고(이하 2 차 Yaounde 선언) 12 개 좌표를 획정하였으며 1975 년 6 월 동 경계선을 해양 쪽으로 확장하는 A~G 좌표를 추가로 합의하였다(이하 Maroua  선언).

 

차드호가 고갈되면서 수 개의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영국과 프랑스가 획정하고 관리 위원회가 확정한 경계선의 카메룬 지역에 형성된 마을에 대해 나이제리아인들이 거주하게 됨에 따라 양국간에 분쟁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나이제리아와 카메룬은 차드호 상의 국경과 1975 년 Maroua 선언으로 결정되지 않은 해양 경계와 Bakassi 반도 영유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카메룬과 나이제리아는 수 차례 협의를 진행하였으나 해결이 난망시되자 카메룬은 1994 년 3 월 24 일 36(2)조 강제 관할권 수용 선언 근거하여 이 문제 해결을 ICJ 에 청구하였다. 나이제리아는 선결적 항변 제기하면서 ICJ 의 관할권을 부인하거나 재판 청구를 아직 수리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나. 주요 쟁점 및 판결

 

1) 강제 관할권 수용 선언의 발효 요건 존부

 

     카메룬은 ICJ 의 강제 관할권 수용 선언을 1994 년 3 월 3 일 UN 사무국에 기탁하였다.  사무국은 카메룬의 수용 선언서 사본을 기탁 후 11 개월이 지나서 UN 회원국에게 회람하였다. 나이제리아는 1994 년 3 월 24 일 카메룬이 재판을 청구한 당시 카메룬의 강제 관할권 수용 사실 자체를 통보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카메룬은 선의로 행동해야 할 의무와 상호주의 등 ICJ 헌장 36(2)조의 기제를 남용하였다고 비난하면서 ICJ 는 이 사건에 대한 관할권이 없다고 역설하였다. 

 

재판부는 ICJ 헌장 36(2)조는 아무런 추가 요건 없이 모든 체약국은 ICJ 의 관할권이 강제적인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ICJ 헌장 36(4)조는 강제 관할권 수용 선언이 기탁되어야 하고 선언 사본이 각 체약국에 전달되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을뿐 전달이 효력 발생의 전제 조건으로는 기재되어 있지 않은 점을 환기하였다. 아울러 1957 년 Right of Passage 사건에서 관할권 수용 선언 기탁과 동시에 강제 관할권 체제의 일원이 된 것이며 그 시점부터 강제 관할권 수용 국가간의 계약 관계가 성립된다고 확인된 점, 강제 관할권을 수용한 국가는 동 선언을 수용하고 기탁한 국가에 대해 언제든지 강제 관할권상의 의무에 종속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고 언급된 점, 강제 관할권 수용 선언의 법적 효력은 UN 사무총장의 후속 조치에 의해 좌우되지 않으며 36 조는 수용 선언서 사본이 여타 체약국에 전달되어야 한다거나 기탁 후 일정 기간이 지나야 한다는 등의 추가 요건을 부과하고 있지 않다고 확인된 점을 인용하였다. 

 

재판부는 Right of Passage 사건 판결이 36(2)조 선택 조항의 핵심 사항이라고 평가하고 동 판결의 논리와 결론을 따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재판부는 강제 관할권 수용 선언은 旣수용 선언 국가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ICJ 관할권을 수용하는 것이며 未수용 국가에 대해 행하는 청약 행위에 해당한다고 개념짓고 미수용 국가가 수용 선언을 기탁함으로써 이 청약을 수용하여 계약 관계가 수립하는 것이며 더 이상의 조건은 없다고 설명하였다(para. 25~28).

 

나이제리아는 Right of Passage 사건 판결은 그 후의 국제법의 발달을 고려하여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1969 년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 78 조(c) 183 에 동 협약상의 통보는 타 체약국에 통보된 때에 접수된 것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을 제시하였다. 재판부는 조약법 협약 78 조는 통보나 연락이 수행되어야 하는 방식을 규정하는 것이지 조약에 대한 국가의 동의가 표시되는 조건이나 조약의 발효 조건에 대해 규정하는 것은 아니며 이들 조건은 조약법 협약 16 조184와 24 조185에 규정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이 조항은 비준, 승인, 가입 등의 문건은 기탁에 의해 국가의 동의를 구성하고 동의일을 기준으로 발효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재판부는 이 조항을 근거로 기탁을 기준으로 법적인 관계가 성립한다고 확인하였다(para. 31).

 

나이제리아는 수용 선언 기탁 후 사무총장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데 필요한 합리적인 기간이 경과되기 전에 카메룬이 재판을 청구할 수 없다고도 주장하였다.  나이제리아는 합리적 기간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1984 년 Military and Paramilitary 사건 판결에서 강제 관할권 수용 철회 선언이 발효하기 전까지 합리적인 기간이 경과되어야 한다고 판시한 점을 제시하였다. 동 사건에서 미국은 니카라구아가 미국을 ICJ 에 제소하기 사흘 전에 미국의 기존 ICJ 강제 관할권 수용 범위를 제한한다고 통지하였다.

 

미국은 이 통지는 즉시 발효하고 이 통지에 의거하여 니카라구아가 제소한 분쟁은 미국이 수용한 ICJ 의 강제 관할권 범주에서 제외된다고 주장하였다. 이 사건 재판부는 기존의 강제 관할권 수용 선언에 종료시 6 개월 사전 통보 규정이 있으며 이 시한은 종료시나 변경시에 모두 적용되어야 한다고 판시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은 미국의 통지는 효력이 없다고 판결하였다. 이 사건 재판부는 미국의 통지 행위는 선의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고 상호주의 원칙과도 배치된다고 지적하였다.

 

재판부는 나이제리아가 인용한 Military and Paramilitary 사건은 강제 관할권 수용 선언의 철회에 관한 것으로서 수용 선언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철회는 기존의 계약 관계를 종료하는 것이어서 철회국에 대해 강제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 타국의 권리를 박탈하는 효과가 있는 반면 수용 선언 기탁은 타국의 기존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생성하는 것이므로 시한 요건이 불필요하다고 설명하였다(para. 31~34). 나이제리아는 카메룬이 나이제리아와 영토 획정 협상을 진행하던 중에 ICJ 강제 관할권을 수용하고 재판을 청구함으로써 협상 상대국에 대한 선의를 위반하였다고도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선의의 원칙은 확고하게 성립된 국제법의 원칙이며이는 UN 헌장 2(2)조 186,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 26 조 187등에 성문화되었을 뿐 아니라 다수의 PCIJ,  ICJ 판례에서도 확인된다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선의의 원칙이 법적인 의무의 창설과 수행을 규율하는 기본적인 원칙 중의 하나라 하더라도 여타의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 자체만으로 의무의 원천이 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하였다. 국제법에는 ICJ 헌장 선택 조항 수용 또는 수용 의사를 타국에게 통지해야 할 의무는 없으며 나이제리아의 권리가 침해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선의의 원칙을 원용할 수 없다고 논시하였다.

 

사실 관계를 보더라도 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Bakassi 반도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한 사실을 카메룬이 1994 년 2 월 28 일 안보리에 보고하자 나이제리아는 1994 년 3 월 4 일 카메룬이 ICJ 에 재판을 청구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전에 안보리에 카메룬이 위 사건을 ICJ 에 제소하여 국제 분쟁화하려 한다고 보고한 점에서 확인되듯이 나이제리아는 카메룬이 ICJ 에 제소할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고 판단하였다(para.  38~40).

 

1965 년 9 월 3 일자 나이제리아의 ICJ 강제 관할권 수용 선언문에는 상호주의를 조건으로 ICJ 강제 관할권을 수용한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나이제리아는 카메룬이 재판을 청구한 날에 자신은 카메룬이 강제 관할권을 수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으며 따라서 카메룬에 대해서 제소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이는 나이제리아의 수용 선언문에 적시된 상호주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것이라고 강변하였다. 즉 나이제리아는 자신의 수용 선언문 중 “that is to say, on the sole condition of reciprocity"라는 구절은 재판 청구가 (예고도 없이) 돌발적으로 제출되는 상황을 배제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나이제리아가 제시하는 구절은 앞 문장을 다시 설명하는 것이지 추가적인 조건을 부과하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으며 만일 나이제리아가 돌발 제소를 방지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그 취지를 정확히 표현하는 문안을 삽입해야 했다고 지적하고 실제로 영국 등 십여개 국가가 그리하였다고 소개하였다(para. 45).

 

2) ICJ 불제소에 대한 묵시적 합의 존부 및 금반언 원칙 등의 위배 여부

 

     나이제리아는 카메룬과 자신은 지난 20 여년간 영토 분쟁을 양국간의 협의 체제를 통해 해결한다는 묵시적인 합의가 있어 왔으며 이에 의해 ICJ 제소가 금지된다고 주장하였다. 나이제리아는 카메룬이 ICJ 에 제소하는 것은 금반언의 원칙과 선의 및 약속은 준수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위반된다고 부연하였다. 재판부는 국경 획정을 위한 양국간 협의가 국가 원수, 외교 장관, 전문가 등 다양한 수준에서 시행되어 왔으며 특히 1970 년부터 1975 년까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다가 중단된 후 1991 년 재개되었다는 사실은 확인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ICJ 에 제소하기 전에 모든 외교 협의를 소진해야 한다는 원칙은 일반 국제법이나 ICJ 헌장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대개 조약의 분쟁 해결 조항이나 ICJ 제소를 위한 특별 약정, 또는 ICJ 강제 관할권 수용 선언에 유사한 취지의 문안을 포함시킬 수는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 사건의 경우 위의 경우에 모두 해당되지 않으며 두 당사국이 양자 협의로 국경 문제를 해결하려고 장기간 노력했다는 사실이 동 문제를 ICJ 나 여타 사법 기관에 회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시사하는 것도 아니라고 언급하고 나이제리아의 묵시적 합의론을 기각하였다. 금반언의 원칙의 경우 재판부는 카메룬이 이 분쟁을 양자 협의를 통해서만 해결하겠다고 분명하고 일관되게 행동이나 선언을 통해 약속했어야 하며 또한 나이제리아가 이 약속을 신뢰함으로써 손실이나 피해를 보았어야 성립이 된다고 설명하였다. 재판부는 카메룬이 이러한 약속을 한 바가 없음은 사실로서 확인이 되므로 금반언 및 선의, 약속 준수 원칙 위반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정리하였다(para.  56~59).

 

3) 차드호 관리 헌장 위배 여부

 

     나이제리아는 카메룬의 ICJ 제소는 차드湖 지역 관련 분쟁은 차드호 관리 위원회가 관장한다고 규정된 차드호 관리 헌장 위반이라는 항변을 제기하였다. 차드호 관리 헌장은 1964 년 5 월 22 일 카메룬, 나이제리아, 차드, 니제르가 체결한 차드호 공동 개발 및 보전에 관한 조약으로서 각국 대표로 구성된 관리 위원회가 분쟁 해결 등을 포함한 각종 권한을 행사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나이제리아는 차드호 관리 위원회는 UN 헌장 52 조에 규정된 지역 기구에 해당하며 차드호 지역의 안전보장 및 공공 질서와 관련된 문제에 있어 배타적인 권한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경 획정은 이 범주에 속하는 문제라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차드호 관리 위원회가 특정 지역에서 권한을 행사하는 국제 기구에 해당할 수는 있으나 평화와 안전에 관한 동 지역의 분쟁 해결을 목표로 하고 있지는 않으므로 UN 헌장 52 조상의 지역 기구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설사 그렇다고 인정한다 하여도 Military and Paramilitary 사건에서 Contadora process 가 52 조상의 지역 기구에 해당하지만 지역 협상 절차 소진이 ICJ 제소 전제 조건이 될 수 없으며 Contadora  process 의 존재는 ICJ 가 니카라구아의 재판 청구를 심리하는데 장애가 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음에 비추어 이 사건에 대해 ICJ 가 관할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설시하였다.

 

기구의 성격이 무엇이든 지역 협상 절차가 존재한다 하여 ICJ 가 UN 헌장과 ICJ 헌장이 부여한 기능을 행사하는 것이 방해받지 않는다고 확인하였다. 나이제리아는 차드호 관리 위원회가 UN 헌장 93 조의 사법 기관에 해당하며 차드호 경계 획정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고 주장하였으나 재판부는 차드호 관리 헌장의 문안상 관리 위원회가 판결문이나 판정문을 발표하는 권한도 없으므로 사법 기관이나 중재 기관으로 볼 수 없고 관리 헌장에는 관리 위원회에게 국경을 획정할 수 있는 배타적인 권한도 부여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다(para. 69~70).

 

4) 여타 관련국의 필수적 참여 여부

 

     나이제리아의 네번째 항변은 차드 호수 내에서의 카메룬과 나이제리아의 국경을 획정하면 연안국으로서 호수 일정 지역을 정당하게 영유하고 있는 니제르의 경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ICJ 는 이 사건을 심리하거나 관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차드 호수는 카메룬, 나이제리아, 차드가 분할하고 있으므로 그 경계는 공동으로 결정해야지 카메룬, 나이제리아가 양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고 양국 경계 획정이 제 3 국인 차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당사국의 동의가 없이는 관할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 ICJ 의 확립된 원칙이기는 하나 재판에 참여하지 않은 訴外국가의 법적인 이해 관계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하여 요청된 재판의 심리가 금지되는 것은 아니라고 언급하고 ICJ 는 지금까지 소외 국가의 법적인 권리가 판결의 주요 대상(subject matter)이 되는경우에만 관할권 행사를 사양하여 왔다고 환기하였다. Phosphate Lands in Nauru 사건과 East Timor 사건에서 뉴질랜드, 포르투갈의 이해 관계가 간접적으로 관련이 되었지만 심리를 진행하여 판결한 점을 근거로 제시하였다.

 

재판부는 카메룬과 나이제리아의 차드호 경계를 획정할 경우 3 국의 경계선이 만나는 지점의 위치가 변동될 가능성은 있으나 카메룬의 판결 청구 요지는 명백히 카메룬과 나이제리아간의 경계 획정이고 카메룬과 차드 간의 기존 차드호 경계에 대해서는 다툼이 없으므로 이 사건 판결을 통해 결정될 카메르-나이제리아-차드 국경선 교차점(3 중점) 위치는 카메룬과 차드의 기존 경계선 상에서 결정될 것이기 때문에 차드의 법적인 이해 관계는 이 사건에서 판결의 주요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확인하였다. 따라서 차드가 이 재판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 하여 재판부가 카메룬과 나이제리아 간의 경계를 획정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판결하였다.

 

재판부는 아울러 Territorial Dispute(Libya/Chad) 사건에서 리비아와 차드의 경계선 동쪽 끝점은 수단과의 서쪽 경계선 상의 일점에서 결정되고 서쪽 끝점은 차드, 리비아, 나이제리아 국경이 만나는 3 중점이 되는 상황에서 수단과 나이제리아가 재판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리비아와 차드 간의 국경을 획정한 사례를 예로 들고 나이제리아의 네번째 항변을 기각하였다(para. 78~82).

 

5) 수리 불능성

 

     차드호부터 대서양에 이르는 나이제리아와 카메룬 국경 약 1,600km 중 양측이 주장이 대립하는 부분은 국경 양 끝 차드호상 일부 섬과 해안의 지역의 영유권이었다. 이를 제외한 전체 육지 국경에 대해서는 다툼이 없었다. 카메룬이 재판을 청구한 내용은 차드호부터 해안까지 양국 전체 국경을 획정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나이제리아는 국경 태반에 대해서는 분쟁이 없으므로 전체 국경을 획정하여 달라는 카메룬의 청구는 수리해서는 안된다는 항변을 제기하였다.

 

카메룬은 나이제리아가 차드호 상의 섬과 해안 일부 지역에 대해 영유권을 시비하는 것은 전체 국경에 대한 분쟁이라고 반박하였으나 재판부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쟁이 없는 육지 국경에 대해 양국이 식민지 독립 이후 정식으로 획정한 바도 없고 나이제리아는 이 경계가 관련 문건에 의해 성립되고 관행상 존중되어 왔다고 하나 관련 문건과 그 관행이 무엇인지 특정하지도 못하고 있어 육지 국경의 확인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아울러 재판부는 나이제리아가 카메룬의 영유권 주장에 대해 아직 자신의 입장을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나이제리아가 영유권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선결적 항변 단계에서 밝히지 않고 본안 심리 단계에서 밝히는 것은 나이제리아의 재량이지만 이러한 나이제리아의 입장으로 인해 현 단계에서는 이 사건 분쟁의 정확한 범위를 확정하기 어려우며 따라서 두 국가간에 분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카메룬의 재판 청구를 심리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논시하였다(para 93).

 

나이제리아는 카메룬이 시비하는 나이제리아에 의한 국경 침범 사례가 시기, 장소 등 기본적인 내용을 결여한 불분명하고 막연한 주장이어서 재판 청구는 시비의 정확한 성질을 특정하고 시비가 기초하고 있는 사실과 근거에 대해 간략히 서술하라는 ICJ 재판 절차 규칙 38(2)조189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나이제리아의 효과적인 방어도 불가능하게 하고 있으므로 수리해서는 안된다고 항변하였다. 재판부는 재판 절차 규칙 38(2)조의 ‘간략하다’는 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동 조항의 문안은 물론 대상과 목적에 비추어 보아도 그렇다고 언급하였다.

 

재판부는 38(2)조는 시비가 기초하고 있는 사실과 근거를 나중에 추가하는 것을 배제하고 있지 않으며 추가적인 사실과 법적인 견해를 제출할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우선 재판을 청구하는 것이 확립된 국가 관행이라고 설명하였다. 재판부는 카메룬의 재판 청구는 자신의 시비를 뒷받침하는 사실과 근거를 간략히 서술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나이제리아의 항변을 기각하였다.  재판부는 추가로 제출되는 사실과 법적 견해가 재판이 청구된 기존 분쟁을 성격을 달리하는 분쟁으로 변형시키지 않는 한 제출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고 확인하였다.  카메룬의 시비가 불명확하여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 재판부는 시비를 입증할 거증 책임은 제소국에 있는 것이며 제소국이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시비하는 바가 기각되는 것이지 증거가 부족할 것을 예단하여 시비를 수리할 수 없다고 결정할 수는 없다고 한 Military and Paramilitary 사건의 판결 190 을 인용하여 역시 수용하지 않았다(para. 98~101).

 

선결적 항변에 대한 판결이 1998 년 6 월 11 일 공표된 이후 나이제리아는 ICJ 헌장 60 조191에 의거하여 동 판결의 해석을 1998 년 10 월 28 일 청구하였다. 청구 내용은 재판부의 위의 판결은 카메룬이 추후 제출할 수 있는 새로운 사실과 법적 견해는 재판 청구시 언급한 침범 사례와 관련된 것에 한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카메룬은 재판이 진행되면서 나이제리아가 국경을 침범한 사례를 추가로 제출하였는데 이중 상당수는 1994 년 3 월 29 일 재판을 청구한 이후에 발생한 것이었다. 나이제리아는 재판 청구시 발생하지 않은 사건 또는 재판 청구시 언급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는 새로운 자료를 제출할 수 없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나이제리아의 해석을 수용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재판이 청구된 분쟁의 성격을 변형시키지 않는 한 새로운 사실과 법적 견해를 제출할 수 있다는 위의 판결이 나이제리아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고 확인하고 나이제리아의 해석 청구를 수리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해석 청구 판결문 para. 15~16).

 

나이제리아는 카메룬이 요청한 양국간 해양 경계는 Bakassi 반도의 영유권이 결정되기 전에는 결정할 수 없는 것이므로 수리해서는 안된다는 항변도 제기하였다. 재판부는 Bakassi 반도 영유권을 결정하지 않고 해양 경계를 획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어렵다는 점은 수긍하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카메룬이 요청한 것은 Bakassi 반도 영유권과 대륙붕 및 배타적 경제 수역의 해양 경계를 획정하여 달라는 것이어서 두 청구 모두 재판구가 결정해야 할 사항이며 두 청구가 모두 실질적으로 심리될 수 있도록 심리의 순서를 정하는 것은 재판부의 재량이라고 언급하였다. 재판부가 Bakassi 반도 영유권을 결정하고 해양 경계를 획정하면 될 일이므로 선결적 항변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일축하였다(para. 106).


나이제리아는 카메룬이 요청한 해양 경계 획정은 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인접 연안국의 해양 경계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수리해서는 안된다는 항변도 제기하였다.  재판부는 이 문제는 선결적 성격이 아니라 본안에서 다루어져야 할 사항으로 보았다. 양국간의 해양 경계 획정이 주변 국가의 법적 권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있으나 그 정도나 방식, 카메룬의 재판 청구에 대한 판결을 내리지 못할 정도로 타국의 이해가 침해될지 여부 등은 현재로서는 알 수 없고 카메룬이 제기하는 주장의 실질을 본안 심리에서 심리해보아야 판단할 수 있다고 재판부는 정리하였다(para. 116). 이상의 심리를 토대로 재판부는 나이제리아의 선결적 항변을 모두 기각하고 본안 심리를 진행하였다.

 

6) 차드호 경계 획정

 

     1919 년 Milner-Simon 선언, Thomson-Marchand 선언, Handerson-Fleuriau 교환 공한은 차드호에서의 나이제리아와 카메룬 경계를 과거 영국, 프랑스, 독일 식민지 경계선이 만나는 3 중점으로부터 에베지江 입구를 연결하는 직선이라고 서술하고 3 중점의 위치가 대략 13°05'N, 14°05'E 라고 하였다.

 

이 경계 획정은 그 후 국제적으로 시비된 바 없었으며 1983 년 7 월 차드호 관리 위원회 산하 경계 획정 실무위원회에서도 이를 근거로 하여 3 중점의 정확한 좌표를 13°05'00"0001N, 14°04'59"9999E 로, 에베지강 입구점 좌표를 12°31'17"4N, 14°12'11"7E 로 정하였다. 카메룬은 따라서 차드호에서의 경계는 이미 확정된 것이라는 입장이나 나이제리아는 경계 획정 실무위가 1983 년 7 월 획정한 경계는 나이제리아가 비준하지 않았으므로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영국과 프랑스가 획정하고 관리 위원회가 확정한 경계선의 카메룬 지역에는 다수의 섬과 마을(원래는 섬이었으나 차드호의 고갈로 인해 내륙화)이 있었다. 나이제리아는 이들 마을 주민은 오래전부터 나이제리아와 역사, 문화적 유대를 공유하고 있고 나이제리아가 행정권을 행사하여 왔으며 카메룬이 이에 항의한 바 없으므로 나이제리아 영토라고 주장하였고 이를 반영하여 차드호 경계를 다시 획정해야 한다고 강변하였다.

 

재판부는 비록 측량을 통해 정확히 분획하지는 않았지만 차드호의 경계는 영불간의 선언 등에 의해 획정되었으며 차드호 관리 위원회도 이를 승인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차드호 관리 위원회가 1983 년부터 1991 년까지 행한 작업은 문장으로 획정(delimitation)된 경계를 지도상에 구체적으로 표시(demarcation)하는 작업으로서 관리 위원회 산하 실무위의 작업 결과가 1994 년 3 월 23 일 차드호 관리 위원회 협정 국가 수반 회의에 제출되어 승인되었고 수반 회의 의사록에 차드호 경계에 관한 기술 문서가 부속서로 첨부되었다고 재판부는 확인하였다. 수반 회의 의사록은 각국이 국내 절차에 따라 이 문서를 채택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고 차기 회의시 서명한다고 규정되어 있었으나 나이제리아는 서명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차드호의 경계는 이미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획정되었고 차드호 관리 위원회의 임무는 3 중점과 에베지강 입구의 정확한 위치를 정하는 것이었다고 확인하였다. 나이제리아는 이 위치 획정이 매우 중요하므로 차드호 전체 경계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재판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차드호의 경계는 Milner-Simon 선언, Thomson-Marchand  선언, Handerson-Fleuriau 교환 공한에서 원칙적으로 이미 정해졌으며 차드호 관리 위원회가 해당 좌표를 정한대로 경계를 획정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다만 차드호 고갈로 인해 에베지강 입구가 내륙화되었고 내륙 안쪽에서 에베지강이 두 갈래로 나뉘어 진 점을 감안하여 재판부는 입구점에서의 나이제리아와 카메룬의 국경을 에베지강 입구점에서 에베지강 분류점 연결선으로 보다 자세히 정하고 분류점의 좌표를 12°30'14"N, 14°12'03"E 로 정하였다. 결국 차드호에서의 양국 경계는 3 중점-에베지강 입구점-에버지강 분류점이 되었다(본안 판결문 para. 51~61).

 

 

7) 차드호 내 부락 영유권

 

     나이제리아는 차드호가 고갈되어 내륙화된 지역에 나이제리아 주민들이 정주하기 시작하였으며 인근 나이제리아 지방자치단체는 이들 주민의 정착을 지원하였고 보건소 설치, 교육 시설, 순찰 등의 시정권을 행사하였으며 이에 대해 카메룬은 아무런 항의도 제기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나이제리아는 이들 부락에 대한 자신의 영유권이 카메룬의 묵인을 통해 역사적으로 고착(consolidate)되었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나이제리아는 역사적 고착에 의한 영유권 이론이 국제법 학자에 의해 제기되고 발전되어 왔다고 설파하였다.

 

 

재판부는 이 이론이 기존의 영유권 분쟁에서 한번도 채택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면서 학자간 다툼이 심한 이론으로서 기존의 확립된 영유권 획득 방안을 대체할 수 없다고 보았다. 또한 나이제리아가 제기하는 역사적이라는 기간이 불과 20 년 남짓한 것이어서 설사 역사적 고착 이론에 의한다 하더라도 영유권을 인정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라고 언급하였다. 재판부는 보건, 교육, 치안은 대표적인 주권 행사 행위이기는 하나 이미 이 지역이 영불 선언 등에 의해 카메룬의 소유였으므로 카메룬의 묵시적 동의를 통해 카메룬의 영유권이 나이제리아로 이전되었음이 증거로 입증되는지 여부가 법적인 쟁점이라고 설명하였다.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로 볼 때 1982~85 년 기간 중 카메룬 당국이 해당 부락을 행정 목적으로 부정기적으로 방문한 기록이 있고 투표 참여, 치안 유지, 추장 임명, 조세 징수 등의 시정 활동이 간헐적으로 수행된 점이 인정된다고 확인하였다. 카메룬은 1984 년~1994 년간은 차드호 경계 획정을 위한 차드호 관리 위원회의 활동이 진행 중이었고 나이제리아도 참여하고 있었으므로 동 기간 중의 이들 부락에 대한 나이제리아의 시정 활동은 실효적 지배 행위가 될 수 없고, 나이제리아가 이들 부락에 대해 영유권을 정식으로 주장한 것은 1994 년 4 월 14 일자 외교 공한을 통해서이나 카메룬은 이에 대해 즉각 항의했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이상에 비추어 볼 때 카메룬이 이들 부락에 대한 자신의 영유권을 묵시적으로 포기하였다고 볼 수 없고 Milner-Simon 선언, Thomson-Marchand 선언,  Handerson-Fleuriau 교환 공한이 획정한 경계선 이동 지역에 대한 영유권은 카메룬에게 있다고 판시하였다(para. 65~70).

 

8) 내륙 경계 획정

 

    나이제리아와 카메룬은 차드호부터 대서양 해안까지의 양국 경계는 1931 년 Handerson-Fleuriau 교환 공한(1919 년 Milner-Simon 선언, 1930 년 Thomson-Marchand 선언 포함), 1913 년 영독 조약에 의해 획정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1913 년 영독 조약 중 Bakassi 반도 부분은 제외). 육지 국경을 둘러싸고 양국간 충돌이나 이견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들 문건에 적시된 양국 국경은 정확한 좌표나 측량으로 표시된 것이 아니라 문장으로 서술된 형태여서 일부 애매모호한 점이나 불분명한 내용이 있었다.

 

나이제리아와 카메룬이 재판부에 요청한 것은 육지 국경을 새로 획정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기존 문건상의 국경을 확인(confirm) 또는 명확히 하여 달라는 것(clarify)이었다. 예를 들면 강을 경계로 나눈다고 서술된 구역에 실상은 강 줄기가 두 개여서 어느 흐름이 경계인지 불분명하였다. 재판부는 위 문건 및 기타 참고 자료 등을 자세히 연구, 분석하여 양국간 국경을 위 문건에 서술된 내용대로 확인하되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추가적으로 해석하여 명확히 하였다.

 

9) Bakassi 반도 영유권

 

     Bakassi 반도는 대서양 해안 양국 국경 사이에 위치한 습지대로서 좌우로 Akwayafe 강과 Rio Del Rey 강이 흐르고 있었다. 1913 년 영독 조약은 Akwayafe 하구의 두 기준점에서 시작하는 Akwayafe 강 항행 最深線을 기준으로 양국 경계를 삼는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이 규정에 따르면 Akwayafe 강 오른쪽에 위치한 Bakassi 반도는 영국령에서 독일로 이양되었으며 1 차 세계대전 후 독일 식민지를 영국과 프랑스가 몰수하게 됨에 따라 영국령 나이제리아가 되었다가 독립과 함께 카메룬 영토가 되었다. 나이제리아는 1913 년 당시 독일 국내법에 따르면 영토 변경은 의회 비준 사항이었으나 1913 년 영독 조약은 독일 의회 비준을 받지 않았으므로 무효라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독일 자신도 관련 국내법 절차를 준수하였다고 보고 있고 영국도 비준 등과 관련하여 아무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으며 동 조약은 양국 관보에 정식으로 게재되었다는 점을 들어 나이제리아의 주장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para. 197). 나이제리아는 영국이 1913 년 영독 조약을 통해 Bakassi 반도를 독일에 이양할 권리 자체가 없었다는 주장도 제기하였다. 19 세기 이 지역은 독립적인 부락의 연합 형태였으며 영국은 1884 년 9 월 각 부락의 추장들과 보호 조약을 체결하였다. 영국은 이 조약을 통해 이 지역이 영국령이 되었으며 이를 1913 년 영독 조약을 통해 독일에게 할양하였다는 입장이었으나 나이제리아는 1884 년 9 월 보호 조약은 내용상 타국과의 약정 체결시 영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서 추장들의 조약 체결권만이 제약되었을 뿐 여타 주권은 추장들이 여전히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영국이 임의로 이 지역을 독일에게 할양할 수 없었고 따라서 1913 년 영독 조약의 Bakassi 반도 관련 조항은 무효라는 입장이었다.

 

재판부는 보호 조약의 법적 성격이 쟁점이라고 보았다. 19 세기 서구 열강이 체결한 보호 조약은 체결 상대국이 서구 열강의 보호령(protectorat)이 되어 사실상 주권을 상실하거나 피보호 국가(protected state)가 되어 조약 체결권만 제한받는 형태가 되기도 하고 체결 상대가 국가가 아니라 부족장이 되는 경우도 있는 등 그 내용과 형태가 다양하였다. Bakassi 반도의 경우 영국은 약 350 여명의 추장과 보호 조약을 체결하였다. 

 

재판부는 보호 조약은 대등한 당사국간의 조약이 아니라 식민 영토를 획득하는 방식의 일종으로서 피보호대상에 대한 종주권(suzerainty)이 보호 국가가 외부에 대해 주장하는 영유권의 토대가 된다고 판단한 Island of Palmas 사건 판례와 서부 사하라 지역 부족들과의 약정이 영유권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본 ICJ 의 권고 의견을 인용하였다.  재판부는 현재의 국제법으로는 이러한 방식의 영토 획득이 인정되지 않지만 과거에 체결된 조약의 법적 효과는 현재에도 유효하다고 설명하고 영국이 Bakassi 지역 부족장들과 체결한 보호 조약은 영토의 할양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영국은 조약 체결과 동시에 자신이 이들 부락群을 단지 외교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施政한다고 생각하였으며 이는 해당 지역 총독이 영국 외무성에 보고한 서한과 영국의 시찰단 활동에서도 확인된다고 보았다. 아울러 1884 년 보호 조약 체결 이후 Bakassi 지역 부족장들이 독립된 단위로서 존재하지 않았으며 영국은 이 지역 일대를 포함한 인접 지역 전체를 영국의 Nigeria 보호령으로 일괄하여 취급하였고 1913 년 영독 조약 체결시는 물론 1960 년 카메룬에 귀속될 당시 이에 항의한 부족장도 없었다는 점을 재판부는 추가로 제시하였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당시의 국제법상 영국은 1913 년 독일과 Bakassi 지역을 포함하여 나이제리아 일대의 경계를 획정할 권한이 있었다고 판시하였다(para. 205~209). 나이제리아는 Bakassi 지역은 1960 년 독립 당시까지 부족장들의 주권하에 있었으며 나이제리아는 이들 부족장으로부터 영유권을 획득하였다는 영국의 주장이 국제연맹과 연합의 위임통치, 신탁통치를 받은 역사적 사실에 합치하지도 않고 관련 증거도 없다고 일축하였다(para. 212). 1971 년 4 월 제 2 차 Yaounde 선언과 1975 년 6 월 Maroua 선언을 통해 나이제리아와 카메룬은 양국간 해양 경계 일부를 획정하였다. 이 경계선 오른쪽에 Bakassi 반도가 위치하고 있어 카메룬에게 영유권이 있는 것이 자명하였다. 나이제리아는 1980 년대까지 자국 고위 관료가 Bakassi 반도를 방문할 때마다 카메룬에게 사전에 통보하였다. 재판부는 이는 나이제리아가 Bakassi 반도에 대한 카메룬의 영유권을 인정한 근거라고 보고 1913 년 영독 조약은 합법적이라는 결론을 재확인하였다 (para. 214~217). 

 

나이제리아는 1975 년 6 월 Maroua 선언이 비록 Bakassi 반도를 카메룬쪽에 두는 내용으로 양국 해양 경계를 획정하였으나 나이제리아 군사 위원회의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무효라는 주장을 제기하였으나 기각당하였다. 나이제리아는 영사적 고착을 통한 영유권 주장을 다시 제기하기도 하였다. Bakassi  반도 일대에 나이제리아 국민들이 오랜 기간 거주하여 왔으며 나이제리아의 시정권 행사에 카메룬이 항의하지 않은 것은 나이제리아 영유권을 묵시적으로 동의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재판부는 Bakassi 반도는 1913 년 영독 조약에 의거하여 카메룬령임이라고 확인하였으므로 나이제리아인의 Bakassi 거주는 카메룬의 조약상의 권리에 상치되고 1960 년 독립 이후 나이제리아인의 Bakassi 거주를 근거로 역사적 권원을 인정하기에는 그 기간이 너무 짧다고 지적하고 나이제리아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실제 나이제리아인이 Bakassi 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960 년대 초부터이며 1968 년 내전을 피해 다수의 나이제리아인이 Bakassi 반도로 유입하기 시작하였다. 나이제리아는 이들 주민에 대해 조세 징수, 학교 설치, 종교 시설 설치, 보건소 운영 등의 실효적 지배 행위를 하였으며 카메룬이 이에 대해 항의한 바 없다는 주장을 하였다.  재판부는 차드호 내 부락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법적으로 중요한 쟁점은 나이제리아의 시정 행위와 카메룬의 무항의가 아니라 카메룬이 법적으로 확립된 자신의 영유권을 나이제리아에게 묵시적으로 양여하였는지 여부라고 지적하고 제출된 자료와 카메룬의 항변으로 볼 때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나이제리아는 Minquiers and Ecrehos 사건 등에서 실효적 지배 행위를 근거로 영유권을 인정한 점을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하였으나 재판부는 위 사례 등은 영유권이 불확실하여 실효적 지배를 기준으로 영유권을 판단한 것으로서 실효적 지배 행위는 법에 저촉된(contra  legem) 것이 아닌 반면 이 사건은 이미 영유권이 확립되어 있는 국가에 대해 타방 국가가 이를 무시하고 행정 행위를 한 것이므로 관련성이 없다고 설명하였다. 실효적 지배 행위가 영유권이 행위 시행 국가에 있음을 시사하는 것과 실효적 지배 행위가 이미 수립되어 있는 조약상의 영유권을 치환할 수 있는지는 법적으로 다른 문제라고 부연하였다.

 

아울러 법적인 영유권과 실효적 지배가 충돌할 경우 영유권이 우선한다고 판시한 판례 192 도 환기하였다. 재판부는 카메룬도 간헐적이기는 하지만 조세 징수 등 행정 행위를 하였으며 그 빈도와 강도가 미약한 것은 원격지라는 특성과 카메룬의 행정력에 비추어 이해할만하고 보았다. 무엇보다 양국은 1975 년까지 Bakassi 반도를 카메룬 쪽에 두는 내용으로 해양 경계선을 합의하였으며 1994 년 나이제리아 군이 Bakassi 반도에 진입하였을 때 즉각 항의한 점 등에 비추어 카메룬이 Bakassi 반도에 대한 영유권을 이양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para. 220~223). 이상의 심리를 근거로 재판부는 Bakassi 반도에 관한 양국 경계는 1913 년 영독 조약에 의해 획정되었으며 Bakassi 반도는 카메룬 영토라고 확인하였다.

 

10) 과거 해양 경계 획정 합의의 효력

 

     양국간 해양 경계는 1971 년 2 차 야운데 선언과 1975 년 Maroua 선언을 통해 각각 1~12 점 및 A~G 까지는 획정이 되어 있었다. 1913 년 영독 조약은 해양 경계의 시작점이 Akwayafe 강 하구 양단을 잇는 선과 강의 최심선이 교차하는 지점(아래 지도의 1 번 지점)이라고 규정하였다. 나이제리아가 이 사건에서 이들 선언, 조약을 부정하였으므로 카메룬은 1~12 지점과 A~G 지점 간의 경계선을 확인하여 주고 양국간의 향후 분쟁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차제에 ICJ 가 G 지점 이원의 해양 경계도 획정하여 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하고 자신의 안을 제시하였다. 이 안은 양국간 등거리선을 나이제리아쪽으로 일부 이동한 것이었다. 나이제리아는 G 지점 이상의 경계를 획정하는 것은 해당 해역을 공유하고 있는 적도 기니와 상토메프렌시페의 권리를 침해하게 되므로 재판부가 획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적도기니와 산토메프렌시페의 권리를 불가피하게 침해하게 된다면 이들 국가의 동의 없이 경계를 획정할 수 없겠으나 해양 경계 획정으로 인해 자신의 권리가 영향을 받을 수도 있는 두 국가의 존재 자체만으로 이 사건 당사국 간의 해양 경계를 획정하는 재판부의 관할권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제 3 국의 권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사건 당사국 간의 경계를 획정하는 것은 재판부의 권한이라는 것이다(para. 238~239).

 

나이제리아는 Bakassi 반도 영유권 주장시 제기한 바와 같이 양국간 육지 경계는 Bakassi 우측에 있는 Rio Del Rey 강에서 시작되고 해양 경계는 따라서 이 강에서 시작하는 양국간 등거리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재판부는 이미 Bakassi 반도 영유권은 카메룬에게 있다고 판시하였으므로 이 주장에 대해서는 따로 심리하지 않고 기각하였다. 나이제리아는 1971 년 2 차 야운데 선언은 구속력 있는 협정이 아니라 해양 경계에 관해 지속된 회의의 기록 중의 일부분일 뿐이며 해양 경계는 추후 회의에서의 협의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Maroua 선언은 비록 나이제리아 대통령이 서명하기는 하였으나 당시 나이제리아의 헌법 규정상 발효에 필수적인 최고군사위원회의 승인을 받지 못했으므로 역시 구속력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나이제리아는 카메룬이 협상 상대국인 나이제리아의 조약 발효에 관한 헌법 규정에 대해 숙지하고 있었어야 하며 최고군사위의 승인을 받지 못한 것은 객관적으로 분명한 것으로서 이는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 46 조 193의 조약 체결 동의를 취소할 수 있는 명백한 국내법 규정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나이제리아가 수시로 1971 년 야운데 선언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의사를 표명하여 왔음은 인정하였으나 이 선언에 표시된 선이 1975 년 Maroua 선언에서 확인되었으므로 야운데 선언의 법적 지위를 따로 떼어 결정할 실익은 없다고 보았다. 만일 Maroua 선언이 국제적 합의에 해당한다면 야운데 선언의 경계(1~12 지점선)도 구속력이 있게 된다고 재판부는 확인하였다. 재판부는 Maroua 선언은 야운데 선언의 1~12 지점선을 G 지점까지 연장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비준에 대해 따로 언급하고 있지 않으므로 즉시 발효하는 국제적인 합의에 해당한다고 이해하였다.

 

국내 규정을 위반하여 비준받지 못했으므로 무효라는 나이제리아의 주장에 대해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 46(1)조는 국내법 규정 위반을 이유로 조약 체결 동의를 취소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단 그 위반이 명백할 경우는 예외로 하되 46(2)조는 명백한 위반이란 정상적인 관행이나 선의에 비추어 객관적으로 분명한 위반이라고 규정하고 있음을 환기하고 나이제리아의 주장이 명백한 위반에 해당하는지를 검토하였다. 재판부는 조약 서명 권한에 관한 헌법 규정은 심대한 중요성을 갖는다는 점은 인정하였으나 국가 수반의 조약 서명권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은 적절하게 공표되지 않은 한 46(2)조가 의미하는 명백한 위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설시하였다.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 7(2)조에 신임장을 제시하지 않고도 국가를 대표하는 자로 인정되는 인사에 국가 원수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조약 체결국은 상대국 국가 원수의 조약 체결권을 당연히 신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para. 262~265). 

 

나이제리아는 자국의 국가 원수는 최고군사위원회와의 협의 없이는 법적으로 나이제리아를 구속하게 하는 권한이 없다는 것을 카메룬이 알고 있었거나 응당 알아야 했다고 항변였으나 재판부는 타국의 입법적, 헌법적 변동 사항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국제법적인 의무는 없다고 일축하였으며 1975 년 7 월 두 당사국은 Maroua  선언을 일부 수정하였는 바 이는 동 선언이 유효하다고 인식하고 있었음을 나타내며 1977 년전까지 나이제리아가 동 선언의 유효성이나 적용 가능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점도 짚어 두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Maroua 선언은 구속력이 있고 나이제리아에 대해 법적인 의무를 수립하고 있다고 재판부는 質定하였다(para. 266~268).

 

11) 해양 경계선 획정

 

     G 지점 以遠의 해양 경계에 대해 카메룬은 나이제리아와 적도 기니 사이에 놓여 있고 해안선이 오목한 자국의 사정상 육지 경계를 해양으로 연장하는 방식으로 대륙붕,  배타적 어업 수역의 경계를 획정할 경우 자국은 막심한 손해를 보게 된다고 설명하고 이전 판례에서 확인된 것처럼 해양 경계 획정이 공정한 결과를 가져오게 하기 위해서는 나이제리아와 카메룬 간의 등거리선을 획정하고 이를 적절히 이동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자신의 안을 제시하였다. 나이제리아는 카메룬 안은 해당 해역에 존재하고 있는 적도 기니와 상토메프린시페의 존재, 특히 카메룬 해안 앞에 있는 적도 기니의 영토 Bioko  섬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고 나이제리아와 카메룬 간의 해안선 길이 비율도 과장하였다고 반박하였다.

 

재판부는 해양 경계를 획정해야 할 대상 해역과 이에 관련되는 해안선을 우선 검토하였다. 카메룬은 나이제리아의 Akasso  지점부터 적도 기니의 Cap  Lopez 지점까지가 경계 획에 관련이 되는 해안선이고 이 해안선에 둘러 싸인 기네아灣이 대상 해역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카메룬 해안에 위치한 적도 기니의 Bioko 섬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려를 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양국의 해양 범위는 양국내의 지점을 기준으로 결정하는 것이지 이 사건 당사국이 아닌 적도 기니에 소재한 지점을 기준점으로 삼을 수 없다고 보았다. Bioko 섬과 카메룬 사이의 해역 경계,  Bioko 섬 북쪽 해안에서의 적도 기니의 해양 경계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 없으므로 양국간 해양 경계 획정시 Bioko 섬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고 이 섬의 존재가 확연히 느껴지는 Debudsha 지점 이남은 나이제리아와 접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하였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해양 경계 획정에 관련이 되는 양국 해안은 Akasso 지점부터 Debundsha 지점 사이라고 확정하였다(para. 290~292).


재판부는 양국간 해양 경계를 등거리선을 잠정적으로 획정하고 특별히 고려해야 할 사항을 감안하여 적절히 이동하는 방식으로 획정한 이전의 사례를 이 사건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들 이전 판례에서도 등거리선은 경계 획정의 공정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것이지 그 자체가 경계 획정의 유일한 방식은 아니라고 언급한 점을 환기하였다.

 

공정은 경계 획정의 방법이 아니라 경계 획정시 유념해야 할 목표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공정(equity)이 균등(equality)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부연하였다. 재판부는 해안선의 지리적인 특징이 잠정적으로 획정한 등거리선을 공정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적절히 이동하기 위해 마땅히 고려해야 할 사정에 해당한다는 점은 확인하였으나 공정성을 위해 있는 해안선을 다시 그릴 수 없다고 언급하여 공정성에 대한 고려가 한계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하였다. 카메룬은 자국의 해안선이 오목한 형태여서 자신이 주장할 수 있는 해양의 범위가 줄어 들게 되므로 등거리선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동해야 할 특수한 사정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나이제리아는 지형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을 보상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개진하였다.

 

재판부는 해양 경계 획정에 관련이 있는 해안선의 형태가 오목한 것은 특별히 고려해야 할 사정에 해당할 수는 있으나 이 사건 경우 재판부가 정한 대상 해안선 범위(Akasso~Debundsha)의 카메룬 해안선은 오목한 지역이 없으며 Bioko 섬 대안 해안선이 심하게 만곡되어 있기는 하나 이 지역은 이 사건의 대상 해안선이 아니라고 확인하였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이 사건에서 해양 경계에 관련되는 해안선에는 특별히 고려해야 할만한 정도로 해안선이 오목한 지역이 없으며 전체적인 해안선의 형태상 등거리선을 이동시켜야 할만한 사정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확인하였다(para. 293~297).


카메룬은 Bioko 섬으로 인해 카메룬 對岸 지역은 해양 방향으로의 해역 범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 사정을 등거리선을 조정해야 할 특수한 상황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경계를 획정해야 하는 대상 해역 내에 위치하고 있는 분쟁 당사국 소유의 섬이라면 응당 특수한 상황으로서 고려해야 할 것이나 Bioko 섬은 訴外 제 3 국 적도 기니령으로서 Bioko 섬의 존재로 인해 해양 방향으로의 해역 범위가 제한되는 문제는 카메룬과 적도 기니 간의 문제이지 이 사건에서 재판부가 고려해야 할 사항 아니라고 정리하였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Bioko 섬의 존재는 나이제리아와 카메룬 간의 등거리선을 이동해야 할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정하고 대상 해역에서의 양국간 해양 경계는 등거리선으로 획정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단하였다(para. 299).

 

이에 따라 재판부는 G 지점 이원의 해양 경계를 양국간 등거리선으로 획정하고자 하였으나 G 지점의 좌표가 등거리선 상에 위치하지 않고 약간 동쪽으로 이격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재판부는 G 지점에서 작도한 수평선이 등거리선과 교차하는 지점 X 를 정하고 X 지점에서 양국의 등거리선을 해양 방향으로 연장하였다. 재판부는 X  지점에서의 등거리선은 측량 결과 방위각 187°52'27"선이라고 확인하였고 G 지점 이원의 양국간 해양 경계는 GX 선 및 X 에서의 방위각 187°52'27"선이 타국의 해양 범위를 침범하지 않는 한도까지라고 판결하였다(para. 307).

 

 

12) 배상

 

     카메룬은 차드호가 고갈되자 나이제리아인들이 정주하기 시작하여 세운 부락에 1980 년대 중반부터 나이제리아 군이 진입하였고 1984 년 이후 18 개 부락과 6 개 섬을 점령 중에 있으며 바카시 반도의 경우 1993 년 12 월 나이제리아군이 진공하여 1994 년 7 월에는 교두보를 확보하고 수 개의 카메룬 부락을 점령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카메룬은 이는 국제법 위반 행위로서 나이제리아에게 배상 명령을 내려 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하였다. 재판부는 해당 지역이 카메룬 영토라고 이미 확인했으므로 나이제리아는 신속하게 조건 없이 해당 지역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재판부가 이 사건에서 확인한 국경선 너머로 카메룬군이 주둔하고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확인하였다. 배상과 관련하여 재판부는 Temple of Preah Vihear 사건과 Territorial Dispute(Libya/Chad) 사건에서 분쟁 상대국의 영유권이 확인된 지역에서 즉시 철군하라고 판시한 점과 카메룬에 거주하게 된 300 만 나이제리아인에 대해서 카메룬 정부가 지속적인 거주를 허락하고 관용 정책을 베풀어 적의 보호하겠다고 확인한 점을 인용하면서 나이제리아 철군과 함께 카메룬이 입은 피해는 회복이 되는 것이라고 언급하고 나이제리아의 국제적 책임 존부와 범위는 따로 심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para.  312~319)

 


(작성자 :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


1) 78. Except as the treaty or the present Convention otherwise provide, any notification or communication to be made by any State under the present Convention shall: (a), (b),

(c) If transmitted to a depositary, be considered as received by the State for which it was intended only shen the latter State has been informed by the depositary in accordance with article 77, para 1(e)..

 

2) 16. Unless the treaty otherwise provides, instruments of ratification, acceptance, approval or accession establish the consent of a State to be bound by a treaty upon:

(a) …….., (b) Their deposit with the depositary;

 

3) Article 24

1. A treaty enters into force in such manner and upon such date as it may provide or as the negotiating States may agree.

2. Failing any such provision or agreement, a treaty enters into force as soon as consent to be bound by the treaty has been established for all the negotiating States.

3. When the consent of a State to be bound by a treaty is established on a date after the treaty has come into force, the treaty enters into force for that State on that date, unless the treaty otherwise provides.

 

4) 2. All Members, in order to ensure to all of them the rights and benefits resulting from membership, shall fulfill in good faith the obligations assumed by them in accordance with the present Charter.

 

5) 26. Every treaty in force is binding upon the parties to it and must be performed by them in good faith.

 

6) ……. as compulsory ipso facto and without special agreement, in relation to any other State accepting the same obligation, that is to say, on the sole condition of reciprocity, the jurisdiction of 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n conformity with Article 36, paragraph 2, of the Statute of the Court.

 

7) 2. The application shall specify as far as possible the legal grounds upon which the jurisdiction of the Court is said to be based; it shall also specify the precise nature of the claim, together with a succinct statement of the facts and grounds on which the claim is based.

 

8) Jurisdiction and Admissibility Judgment, ICJ Reports 1984, p. 427. para. 101

 

9) 60. The judgment is final and without appeal. In the event of dispute as to the meaning or scope of the judgment, the Court shall construe it upon the request of any party.

 

10) Frontier Dispute(Burkina Faso/Mali), ICJ Reports 1986, Judgment, pp. 586~587, para. 63

 

11) Article 46

1. A State may not invoke the fact that its consent to be bound by a treaty has been expressed in violation of a provision of its internal law regarding competence to conclude treaties as invalidating its consent unless that violation was manifest and concerned a rule of its internal law of fundamental importance.

2. A violation is manifest if it would be objectively evident to any State con ducting itself in the matter in accordance with normal practice and in good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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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국제법 판례 종합해설 1,2권"(저자 김승호)의 해당사건 부분을 저자의 동의하에 일부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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