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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Grand 사건(Germany v. USA, 2001. 6. 27. 판결) 본문

LaGrand 사건(Germany v. USA, 2001. 6. 27. 판결)

국제분쟁 판례해설/국제사법재판소(ICJ) 판례 2019. 10. 16. 12:11

47. LaGrand 사건(Germany v. USA, 2001. 6. 27. 판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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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사건 개요 및 배경

 

     이 사건은 강도 살해죄로 구속 기소된 독일 국적의 미국인에 대해 미 당국이 영사 보호권을 고지하지 않고 독일 영사에게도 통지하지 않은 것이 영사 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 위반이며 사형 집행 중단을 요구한 ICJ 의 잠정 명령에도 불구하고 사형을 집행한 행위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확인된 사건이다. Walter LaGrand 과 Karl LaGrand 형제는 독일에서 태어나서 1967 년 이민온 후 미국에서 성장한 독일 국적자이다. 미국적을 취득하지 않았으나 독일어를 구사하지는 못했다.

 

1982 년 1 월 7 일 LaGrand 형제는 아리조나州 마라나市의 한 은행을 습격하여 1 명을 살해하였다. 형제는 당일 체포되어 1984 년 12 월 14 일 모두 사형 선고를 받았다.  영사 협약 36(1)조(b)는 외국인 체포, 구금시 즉각 국적국 영사 당국에 통지하고 당사자에게도 동 권리를 통보해야 할 의무가 있었으나 미국 형사 당국은 형제가 독일인임을 인지한 이후에도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사형 선고에 대해 형제는 아리조나주 대법원에 항소하였으나 1987 년 1 월 30 일 기각되었다. 형제는 판결 후 구제를 요청하는 청원을 제기하였으나 주 대법원과 연방 대법원에 의해 각각 1990 년과 1991 년에 기각되었다. 이 두 절차가 진행되는 중에도 형제는 영사 보호권에 대해 통지받지 못했으며 독일 영사관도 구금 및 재판 사실을 미측으로부터 통지받지 못하였다.

 

형제는 아리조나 주 당국이 아닌 다른 경로를 통해 영사 보호권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으며 주미 독일 영사관이 형제의 연락을 받은 때는 이미 1992 년 6 월, 사형 판결과 항소가 기각된 이후였다. 이후 독일 영사관은 LaGrand 형제의 구명을 위한 사법 절차 진행에 참여하였으며 아리조나 주를 관할하는 미 연방 법원에 미 당국이 형제의 구금 사실을 통지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인신 보호 청원(habeas corpus)을 제기하였으나 미 연방 법원은 절차 불이행(procedural default)이라는 미국 사법 원칙을 이유로 기각하였다. 절차 불이행이란 형사범이 연방 법원에서 구제되기 위해서는 우선 주 법원에 먼저 제기되어야 하고 연방 법원은 주법원이 심리를 거부하였을 경우에는 인신 보호 청원에 대해 심리할 수 없다는 미국의 사법 원칙이다. 연방 국가로서 주법원과 연방 법원의 관할권을 구분하고 보장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다. 사형은 인신 보호에 관한 것이고 영사 보호권 미통지는 주 법원 절차에서 제기되어 심리되었어야 하나 그렇지 않았으므로 연방 법원은 '절차 불이행' 규정상 이를 심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연방 법원의 결정은 연방 항소 법원을 거쳐 1998 년 11 월 미 연방 대법원에서 최종 확인되었고 1999 년 1 월 15 일 아리조나 대법원은 두 형제의 사형 집행일을 확정하였다. 독일은 외교부 장관, 총리가 나서서 관용을 베풀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수포로 돌아갔고 Karl  LaGrand 은 1999 년 2 월 24 일 형이 집행되었다. 兄 Walter 의 집행일은 1999 년 3 월 3 일이었다. 독일은 하루 전인 3 월 2 일 이 사건을 ICJ 에 제소하고 판결시까지 사형 집행을 중단하라는 잠정 명령을 내려 줄 것을 아울러 요청하였다. 


사태의 긴박성을 인식한 ICJ 는 즉각 최종 판결이 나기 전까지 Walter 에 대한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미국은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명령하였으나 Walter 는 예정대로 1999 년 3 월 3 일 오후 처형되었다. 독일이 청구한 재판 요지는 미국이 영사 보호권 및 구금 사실을 LaGrand 형제와 독일에게 통지하지 않은 것은 영사 협약 36(1)조(b) 위반이며 자동적으로 영사의 통신권과 접촉권을 보장한 같은 조(a), (c)위반에 해당되고 외교적 보호권 행사 보장 의무도 위반한 것임을 확인해달라는 것이었다. 또한 절차 불이행 규칙 적용과 잠정 명령 불이행의 국제 법 위반 확인과 재발 방지 보장도 청구하였다. 재판 청구 근거는 협약의 해석과 적용에 관한 분쟁은 ICJ 에 회부한다고 규정한 영사 협약 선택 의정서 1 조였다.  독일과 미국은 모두 이 의정서 채택국이다. 미국은 영사 협약 36(1)조(b) 위반은 인정하였으나 나머지 청구 사항은 재판부가 수리할 수 없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나. 주요 쟁점 및 판결

 

1) 외교적 보호권 및 국내 구제 절차 미소진으로 인한 수리 불능성

 

     비엔나 영사 협약 36(1)조176는 (a) 자국민에 대한 영사의 통신 및 접촉권, (b) 구금된 외국인에 대한 영사 조력 요청권 고지 및 영사 관원에의 해당 국민 구금 사실 통지 의무,  (c) 영사의 피구금 국민 면접권 및 법적 대리인 주선권을 규정하고 있다. 독일은 미국이 LaGrand 형제에게 독일 영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점을 고지하지 않았고 독일 영사에게도 이들 구금 사실을 통지하지 않은 것은 36(1)조(b) 위반이라고 주장하였으며 미국도 인정하였다.

 

독일은 36(1)조(b) 위반으로 인해 독일 영사의 LaGrand 형제와의 통신 및 접촉, 면회 및 대리인 주선을 할 수 없었으므로 미국은 36(1)조(a), (c)도 위반한 것이며 LaGrand 형제를 대신하여 그들의 침해된 권리에 대해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한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은 독일이 주장하는 (a), (c) 위반 행위는 결국 (b) 위반 행위,  즉 영사 조력권 불고지 및 구금 사실 미통지와 동일한 행위로서 중복하여 (a), (c)에도 위반된다고 판단할 실익이 없으며 선택 의정서에 의한 ICJ 의 관할권은 영사 협약의 적용과 해석에 관한 분쟁이므로 일반 국제법과 국제 관습법에 근거하고 있는 독일의 외교적 보호권 시비는 재판부 관할 대상이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국가는 국민의 이익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그를 대신하여 해당 국민의 이익과 권리를 침해한 외국 정부를 상대할 수 있다. 이러한 외교적 보호권은 국제 관습법에 의해 인정되는 국가의 권리이다. 독일은 영사 협약 36(1)조상의 영사 조력권을 고지받을 권리, 영사와 교신할 권리, 그의 면회를 받을 권리 등을 개인의 권리로 보고 LaGrand  형제의 이러한 권리가 침해되었으므로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인데 반해 미국은 영사 협약은 영사 조력에 관한 것이지 외교적 보호권과는 무관하며 피구금 자국민에 대한 영사의 권리는 ICJ 의 관할 대상이지만 자국민의 시비를 외교적 보호권을 통하여 국가가 대행하는 것은 영사 협약 외적인 문제이므로 ICJ 는 관할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미국은 외교적 보호권 행사에 관한 독일의 시비는 동 권리 행사의 전제 조건인 국내 구제 절차가 소진되지 않았으므로 수리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제기하였다. 미국은 영사 조력권 미통지는 해당 사건 재판 과정 중에 제기되었으면 교정될 수 있는 문제였으나 LaGrand 측에서 제기하지 않았고 제기해야 할 시한을 초과하여 제기하는 것은 미국내 소송 절차상 금지되어 있을뿐더러 국제 구제 절차를 소진하지 않았으므로 독일의 재판 청구를 수리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미국의 반론을 수용하지 않았다. (b) 위반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a), (c)도 위반되었는지 여부는 영사 협약의 해석과 적용에 관한 문제이므로 재판부의 관할 대상이며 36(1)조(b)가 개인적인 권리도 창출하고 국가가 개인을 대신하여 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지 여부 역시 영사 협약의 해석과 적용에 관한 분쟁이라고 정리하였다. 미국은 외교적 보호권은 국제 관습법에 근거한 개념이므로 LaGrand 형제의 사적인 권리에 바탕을 둔 독일의 시비는 ICJ 관할권 밖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재판부는 그러한 사실이 개인적인 권리를 창출하는 조약의 당사국이 자국민 사건을 수용하여 해당 국민을 대신하여 동 조약 상의 분쟁 해결 절차에 따른 국제 사법 절차를 개시하는 것을 금지하지는 않는다고 논시하였다(판결문 para. 42).

 

국내 구제 절차 미소진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LaGrand 측이 영사 조력권 미통지 문제를 적시에 제기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기는 하나 미국이 영사 조력 요청권이 있음을 통지해야 한다는 영사 협약 36(1)조상의 의무를 먼저 위반하였으므로 이제 와서 독일의 재판 청구의 수리를 방해하기 위해 국내 구제 절차 미소진에 의존할 수는 없다고 판정하였다(para. 60).

 

2) 국내 법원 판결 심리 불능으로 인한 수리 불능성

 

     아리조나 주법원 심리가 종결될 때까지 LaGrand 형제는 독일 영사에서 자신들이 구금되어 있음을 통지하고 영사 조력권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미국 당국으로부터 고지받지 못하였다. 이를 연방 법원 심리 단계에서 제기하였으나 연방 정부는 인신의 자유와 관련된 사항은 주 법원 단계에서 제기되어야 한다는 procedural default 원칙에 의해 LaGrand 형제가 제기한 시비를 심리할 수 없다고 결정하였다.

 

독일은 미국이 procedural default 라는 국내법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LaGrand 형제로 하여금 영사 협약상의 시비를 제기하지 못하게 하였고 궁극적으로 처형에 이르게 하였으며 이는 접수국의 국내 법규는 36(1)조의 권리가 최대한 보장되도록 행사되어야 한다고 규정한 영사 협약 36(2)조 177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독일은 prodedural  default 원칙 자체를 시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원칙이 자국 영사에게 통지할 수 있는 LaGrand 형제의 권리를 연방 법원 심리 단계에서 실효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박탈하는 방식으로 적용되었으며 이는 36(1)조 권리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국내 법규가 행사되어야 한다는 36(2)조 위반이라고 주장하였다. 

 

미국은 독일의 주장은 미 국내 법관의 판결상의 흠결을 주장하고 이를 정정하여 달라는 것으로서 재판부에게 미 국내 형사 절차상의 항소 법원의 역할 수행을 요구하는 것이며 이는 재판부의 권한이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미국은 36(2)조는 36(1)조의 권리가 접수국의 국내 법규 범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한 것이고 국내 법규란 36(1)조 권리 행사와 관련된 법규, 즉 통신 및 면접 시간, 구금 시설의 안전 등에 관한 법규일 뿐 형사 소송 절차나 항소 법원의 하급심 판결 검토와 관련된 법규도 36(2)조의 범위에 속한다고 해석할 수 없다고 반박하였다. 재판부는 독일의 청구는 영사 협약 36(2)조의 범위 해석을 요청하는 것이며 양국간 분쟁에 관련되는 국제법 적용 이상을 청구하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권능의 행사는 ICJ  헌장 38 조에 의해 명시적으로 재판부에 부여되었으며 재판부를 국내 형사 소송 절차상의 항소 법원으로 변경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para. 52).

 

3) 지연 청구로 인한 수리 불능성

 

     독일은 1999 년 3 월 2 일 ICJ 재판 청구시 판결에 앞서 우선 3 월 3 일로 예정된 Walter LaGrand 의 사형 집행 정지를 명령하는 잠정 명령을 내려 줄 것을 요청하였다.  재판부는 동인의 사형 집행을 중단하기 위해 미국 당국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과 이를 아리조나 당국에 전달하라는 내용의 잠정 명령을 3 월 3 일 발동하였으나 사형은 예정대로 집행되었다. 미국은 독일이 LaGrand 형제의 구금 사실을 인지한 1992 년 이후 미국의 통지 의무 위반 시비를 제기하고 있지 않다가 1999 년 2 월 24 일 Karl  LaGrand 의 사형 집행 이틀 전인 2 월 22 일에야 독일 외무장관이 미 국무장관앞으로 뒤늦게 서한을 보내 구명을 요청하였고 Walter LaGrand 의 사형 집행 시간 27 시간을 앞두고 이 사건 재판을 ICJ 에 청구하였다고 상황을 설명하였다.

 

미국은 독일의 지연 청구는 재판부로 하여금 사안을 충분히 이해하기 전에 잠정 명령을 내리도록 강요하고 있으며 당사자 동등성 원칙과 당사자로 하여금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개진하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재판부가 심리해서는 안된다고 항변하였다. 독일은 1992 년 LaGrand 형제 구금 사실 인지 이후 독일은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다양한 노력을 전개하였다고 반박하고 ICJ 에 제소하지 않은 것은 미국으로 하여금 국제법 위반 행위를 스스로 교정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고 강조하였다.

 

재판부는 독일의 지연 청구를 비난할 수는 있으나 재판부는 독일의 지연 청구의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형 집행의) 불가역성을 감안하여 3 월 3 일 잠정 명령을 발동하였다고 회고하면서 이러한 사정을 감안할 때 독일은 미국의 잠정 명령 불이행을 시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언급하고 독일의 시비는 수리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para. 57).

 

4) 사과 보상에 근거한 수리 불능성

 

     독일의 마지막 청구 요지는 미국이 유사 행위의 재발 방지를 독일에게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독일도 영사 협약 36 조 위반에 대해 사과하고 종결한 사례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독일은 자신의 기준과 다른 기준을 미국에게 요구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36 조 위반에 대한 적절한 구제는 사과라는 것이 국가들의 관행이므로 재발 방지 보장을 요구하는 독일의 청구는 수리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미국이 제시한 독일 사례는 그 내용이 경미한 위반 사례로서 구금된 개인이 영사 조력권을 고지 받지 못하고 극형에 처해지게 된 이 사건과는 궤를 달리한다고 지적하였다. 재판부는 영사 협약 36 조는 모든 가입국에 대해 동등한 의무를 부과하지만 조약 위반에 대한 구제 조치가 모든 상황에서 동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일부 사건에서는 사과가 충분한 구제가 될 수 있으나 일부 사건에서는 부족할 수도 있다고 언급하고 미국의 수리 불능 주장을 기각하였다(para. 63).

 

5) 영사협약 36(1)조(b) 위반의 (a), (c) 위반 연결 여부

 

     미국도 영사 협약 36(1)조(b) 위반은 인정하였으므로 (b) 위반으로 인해 (a), (c)도 같이 위반되었다는 독일 주장의 타당성 여부가 첫 번째 청구 심리의 쟁점이 되었다. 미국은 독일이 주장하는 미국의 (a), (c) 위반 행위가 (b) 위반 행위와 동일하고 영사 조력권을 고지한 1992 년 이후 LaGrand 형제는 자유롭게 독일 영사와 교신할 수 있었으며 독일의 영사 조력 제공권도 박탈된 것이 아니므로 (a), (c) 위반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개진하였다. 특정 의무 위반을 그와는 별개이고 구분되는 또 다른 의무 위반으로 변형하려는 독일의 시도는 기각되어야 한다고 미국은 첨언하였다.

 

재판부는 미국의 (b) 위반으로 인해 독일은 1992 년까지는 LaGrand 형제의 구금, 기소,  판결 사실을 알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미국은 독일의 36(1)조(a), (c) 상의 권리 행사를 박탈한 것이라고 인정하였다. 재판부는 영사 협약 36(1)조는 영사 보호 제도를 촉진하고 이행하기 위해 상호 연계된 규범 체계로서 교신권 및 접촉권과 영사 조력권 고지 방식,  그리고 영사 조력권 제공 방식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접수국이 (b)의 영사 조력권 고지를 이행하지 않아 자국민의 구금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경우 해당 국적국 정부는 36(1)조에 제시된 각종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된다고 재판부는 지적하고 이 사건에서 LaGrand 형제가 실제로 영사 조력권을 추구했을지 여부, 독일이 (동 요청 접수시) 실제 영사 조력을 제공하였을지 여부, (그랬을 경우) 판결 내용이 달라졌을지 여부 등은 중요하지 않으며 영사 협약이 부여한 권리를 미국의 위반으로 인해 독일과 LaGrand 형제가 행사하지 못한 것이 핵심이라고 정리하였다. (b) 위반이 비록 동 조항의 여타 항목 위반으로 반드시 귀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재판부는 이 사건의 경우에는 위와 같은 상황으로 인해 (b) 위반이 (a), (c) 위반으로 귀결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para. 73~74).


미국은 독일의 외교적 보호권 행사 주장의 근거를 부인하기 위해서 36(1)조의 영사 조력권 고지와 접근권은 국가의 권리이며 비록 그 행사로 인해 혜택을 보는 것은 개인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권리는 아니라고 강변하였다. 영사 협약상의 개인의 대우는 불가피하게 국가의 권리와 연결되고 그로부터 유래하는 것이지 개인의 인권이나 기본권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라고 미국은 언급하였고 36 조가 자국민에 대한 국적국의 영사 기능 행사를 촉진할 목적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점에 비추어 36(1)조에 나열된 권리와 의무가 개인에게 접수국 형사 소송 절차에서 특별한 권리나 대우를 보장하려는 것이라고 볼만한 근거가 없다는 의견을 전개하였다.

 

재판부는 36(1)조(b)는 구금된 자의 요청이 있으면 지체 없이 구금 사실을 국적국 영사에게 통지하고 영사에 대한 구금자의 연락을 즉시 전달해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고 말미에 접수국 당국은 위와 같은 피구금자의 권리(his right)를 지체 없이 당사자에게 고지해야 한다고 적시되어 있음을 환기하였다. 36(1)조(c)는 구금된 자국민에게 영사 조력을 제공할 국적국의 권리는 당사자가 반대하면 행사할 수 없다고도 기재되어 있다고 재판부는 환기하면서 이미 수 차례 판례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재판부는 해당 조문을 있는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적시된 문안에 근거하여 볼 때 36(1)조는 개인적인 권리를 창출하는 것이며 이 사건에서 이러한 개인적인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판시하였다(para. 77).

 

6) procedural default 적용 방식의 협약 36(2)조 위반 여부

 

     독일은 미국의 procedural default 원칙은 영사 협약 36(2)조 위반이라고 주장하였다.  미국은 36(2)조는 형사 소송 절차에서 개인이 영사 협약에 관한 시비를 제기할 수 있는 국내 절차를 마련하라고 요구하지 않으므로 procedural default 원칙이 36(2)조 위반을 구성할 수 없고 36(2)조는 오히려 36(1)조상의 권리는 접수국 국내 법규의 범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한다는 제약 요소를 부과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하였다. 재판부는 이미 36(1)조가 국적국의 권리뿐 아니라 구금된 개인의 권리도 창출한다고 확인하였으므로 36(2)조의 '권리'는 국적국뿐 아니라 구금된 개인의 권리도 포함한다고 판시하고 36(2)조는 구금된 개인의 국적국의 권리에만 적용된다는 미국의 주장을 기각하였다.

 

재판부는 procedural defaut 원칙 자체는 영사 협약에 위반되지 않으나 문제는 이 원칙이 구금된 개인이 36(1)조를 원용하여 기존의 판결을 시비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미 당국이 국적국 영사 당국에 즉시 통보해야 할 의무를 준수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해당 개인이 국적국의 영사 조력을 받지 못하게 방해한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이 사건에서 독일은 LaGrand 형제의 요청에 따라 법적 대리인을 주선할 권리가 있으나 미 당국이 통지 의무를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procedural default 원칙은 주선될 수도 있었던 법적 대리인으로 하여금 LaGrand 형제가 주 법원 판결을 실효적으로 시비할 수 없게 하였으며 그 결과 36(1)조 위반에 관한 법적 대리인의 전문적인 주장을 개진하지 못하게 하였다고 재판부는 정리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prodedural defaut 원칙은 36(1)조가 부여한 권리가 최대한 실효성을 갖지 못하도록 금지한 효과를 가진 것이며 이는 36(2)조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para. 89~91).

 

7) 잠정 명령의 법적 의무성 여부

 

     미국은 Walter LaGrand 에 대한 사형 집행을 정지하라는 재판부의 잠정 명령을 무시하고 형을 집행하였다. 독일은 미국의 잠정 명령 위반이 국제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은 잠정 명령이 너무 촉박하였으며 주 정부와 연방 정부 간의 권한 분장상 잠정 명령 준수가 곤란하였다고 언급하면서 재판부의 잠정 명령은 미국을 구속하는 법적인 의무를 창출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차제에 ICJ 헌장 41 조 178에 규정된 잠정 명령의 법적 효과, 즉 법적 의무성 여부에 대해 살펴보겠다고 하였다. 41 조는 상황상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재판부는 각 분쟁 당사자의 권리를 보전하기 위해 채택되어야만 하는 잠정 조치를 제시(indicate)할 권한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indicate 의 사전적 의미상 41 조는 의무성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영문본과 동등하게 정본인 불문본에는 indecate 가 의무의 의미가 내포된 indiquer 로 기재되어 있고 동등 정본상의 해석상의 차이가 있을 경우에는 해당 조약의 대상과 목적을 고려하여 해석하는 것이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의 규정이므로 ICJ 헌장의 대상과 목적을 고려하여 41 조를 해석해야 한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헌장의 대상과 목적은 재판부로 하여금 국제 분쟁을 사법적으로 해결하는 권한을 충분히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며 분쟁 당사국의 권리가 보전되지 않음으로써 재판부의 이러한 권한 행사가 방해받는 상황은 용인되지 않는다고 이해하였다. 헌장의 대상과 목적에 더하여 41 조의 문맥을 고려하여 해석할 때에도 잠정 조치를 제시할 수 있는 권한은 해당 조치의 구속력을 포함하고 있으며 최종 판결에 의해 결정될 분쟁 당사국의 권리를 보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재판부는 논시하였다. 잠정 조치가 구속력이 없다는 주장은 이 조항의 대상과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재판부는 확인하였다. 

 

재판부는 이미 PCIJ 사건에서 국제 사법 제도에서 보편적으로 수용된 원칙상 분쟁 당사국은 향후 판결의 집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떠한 조치도 삼가야 하며 분쟁을 악화하거나 확대할 수 있는 어떠한 조치도 용인되지 않는다고 판시 179 된 바 있음을 환기하고 이에 비추어 잠정 조치의 법적 구속성은 당연하다고 설시하였다. 재판부는 41 조 문안은 PCIJ 헌장의 해당 조항과 동일하며 PCIJ 헌장 초안 협의시 처음에는 잠정 조치가 언급되지 않았으나 브라질 대표의 제안으로 재판부가 잠정 조치를 명령할 수 있다는 문안이 포함되어 논의되다가 재판부가 잠정 조치의 집행을 보장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점을 감안하여 indiquer 로 대체되었을 뿐이라고 설명하였다. 재판부는 조치 집행 보장 수단이 없다는 것과 구속력이 없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서 전자가 후자의 근거 논리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재판부는 또한 국제연합 헌장 94(1)조180에 규정된 ICJ 결정(decision) 준수 의무는 ICJ 의 판결(judgment)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결정을 포함한다고 확인하였다. 이를 근거로 재판부는 잠정 명령은 구속력이 있다고 판시하였다(para. 99~109). 재판부는 이 사건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Walter LaGrand 의 사형이 집행되지 않도록 미국 당국은 재량 하에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명령하였고 이 명령이 매우 촉박하게 결정되어 미국이 이를 집행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아무런 언급 없이 동 명령을 아리조나 주지사에게 단순 전달한 미국의 조치는 잠정 명령을 이행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para. 115).

 

8) 재발 방지의 보장 방안

 

     독일의 재발 방지 보장 요구에 대해 미국은 이미 이 사건에 대해 독일에게 심심한 사과를 표명한데 이어 각주 및 연방의 형사 당국에 외국인의 영사 보호에 관한 안내서를 10 만부 이상 배포하였고 외국인 형사 처리에 관한 교육도 시행하였다고 소개하고 이는 재발 방지를 위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조치를 충분히 시행한 것이며 독일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래에 유사 사건이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반박하였다.

 

재판부는 미국의 이러한 조치는 독일이 요구하는 재발 방지의 보장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아울러 재판부는 향후 독일 국민이 영사 협약 36(1)조(b)의 권리가 존중되지 않은 채 중형을 선고받는 일이 다시 발생할 경우 사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미국은 해당 판결을 영사 협약 위반 사실을 감안하여 다시 검토하고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구체적인 방법은 재판부가 지정할 수 없고 미국 당국이 적절한 방식을 선택하여 판결을 검토하고 재고려하라고 부연하였다(para. 123~127).

 

(작성자 :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

 


1) 1. With a view to facilitating the exercise of consular functions relating to nationals of the sending State:

(a) consular officers shall be free to communicate with nationals of the sending State and to have access to them. Nationals of the sending State shall have the same freedom with respect to communication with and access to consular officers of the sending State;

(b) if he so requests, the competent authorities of the receiving State shall, without delay, inform the consular post of the sending State if, within its consular district, a national of that State is arrested or committed to prison or to custody pending trial or is detained in any other manner. Any communication addressed to the consular post by the person arrested, in prison, custody or detention shall be forwarded by the said authorities without delay. The said authorities shall inform the person concerned without delay of his rights under this subparagraph;

(c) consular officers shall have the right to visit a national of the sending State who is in prison, custody or detention, to converse and correspond with him and to arrange for his legal representation. They shall also have the right to visit any national of the sending State who is in prison, custody or detention in their district in pursuance of a judgement. Nevertheless, consular officers shall refrain from taking action on behalf of a national who is in prison, custody or detention if he expressly opposes such action.

 

2) 2. The rights referred to in paragraph 1 of this article shall be exercised in conformity with the laws and regulations of the receiving State, subject to the proviso, however, that the said laws and regulations must enable full effect to be given to the purposes for which the rights accorded under this article are intended

 

3) Article 41

1. The Court shall have the power to indicate, if it considers that circumstances so require, any provisional measures which ought to be taken to preserve the respective rights of either party.

2. Pending the final decision, notice of the measures suggested shall forthwith be given to the parties and to the Security Council.

 

4) Electricity Company of Sofia and Bulgaria, Order of 5 December 1939, PCIJ, Series A/B no. 79, p. 199

 

5) 1. Each Member of the United Nations undertakes to comply with the decision of the ICJ in any case to which it is a pa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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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국제법 판례 종합해설 1,2권"(저자 김승호)의 해당사건 부분을 저자의 동의하에 일부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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