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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ntier Dispute(Benin/Niger) 사건(Benin v. Niger, 2005. 7. 12. 판결) 본문

Frontier Dispute(Benin/Niger) 사건(Benin v. Niger, 2005. 7. 12. 판결)

국제분쟁 판례해설/국제사법재판소(ICJ) 판례 2019. 10. 16.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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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사건 개요 및 배경

 

     이 사건은 Benin 과 Niger 의 국경을 이루고 있는 Mekrou 강과 Niger 강상의 어느 선이 국경선인지와 하중도의 영유권을 획정한 사건이다. 베넹과 니제르는 모두 프랑스의 식민지(불령 서부 아프리카, French West Africa)의 구성 부분이었다가 1960 년 8 월 독립하였다. 두 나라는 식민지 당시의 불령 서부 아프리카의 내부 행정 구역의 경계였던 메쿠르 강과 니제르강을 국경으로 승계하였으나 구체적으로 강의 어느 선을 경계로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었다. 베넹은 메크르 강은 중간선, 니제르강은 니제르 측의 제방(니제르강의 좌안, 니제르강 전체가 베넹령이 됨)이 경계선이며 니제르강상의 하중도는 모두 베넹령이라고 주장하였다. 니제르는 항해 가능한 최심선이 경계선이며 최심선의 변동에 따라 국경선이 유동적일 수 있고 하중도는 현재의 최심선을 기준으로 영유권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양국은 수 차례의 양자 회담을 개최하고 국경선 획정을 위한 공동위도 설치하는 등 국경 획정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였으나 성과가 없자 이를 ICJ 에 회부하기로 합의하였다.  2001 년 6 월 15 일 양국은 국경 분쟁을 ICJ 에 회부하는 특별 약정을 체결하였고 2002 년 4 월 11 일 공동으로 재판을 청구하였다. 양국은 식민지 당시의 경계가 그대로 독립 후의 국경이 된다는 소위 uti possidetis juris 원칙을 인정하였고 식민지 당시의 프랑스 식민지 관련 법에 근거한 식민지 행정 구역 획정 결과를 수용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다만 행정 구역을 결정한 프랑스의 각종 명령, 조치 등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여 이들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재판의 쟁점이 되었다.

 

나. 주요 쟁점 및 판결

 

1) 식민지 시대 문건에 기초한 경계 획정 가능 여부

 

     불령 서부 아프리카는 colony(州), cercle(道), subdivision(郡), canton(邑)으로 분할되어 있었고 colony 의 창설과 폐지는 프 랑스 대통령, colony 내부의 행정 구역의 창설과 경계 변경은 불령 서부 아프리카 총독의 권한이었다. 1899 년 10 월 프랑스는 니제르강 좌안 以遠 지대에 새로 베넹주를 창설하였고 1900 년 7 월 23 일 인근 지역에 Niger  군직할지를 신설하였다(1900 년 총독령). 불령 서부 아프리카 총독은 신설된 군직할지와 베넹과의 경계를 니제르강의 수로(course of the Niger)로 할 것을 건의하였고 프랑스 식민지 장관은 1901 년 9 월 7 일 자 서한을 통해 이를 승인하였다. 1904 년 10 월 프랑스는 새로 Niger 주(colony)를 신설하고 기존 니제르 군직할지를 포함시켰다. 베넹 주의 행정 구역 경계를 확인한 1934 년 12 월 8 일과 1938 년 10 월 27 일자 불령 서부 아프리카 총독령은 니제르강에 면해 있는 Kandi 주의 경계는 메크루江 합류 지점까지는 니제르강의 수로라고 규정하였다. 1954 년 8 월 27 일 니제르 부지사는 니제르강 주변의 Gaya 군수에게 니제르와 베넹주의 경계는 최고 수위시의 좌안이며 강상의 하중도는 베넹 주 관할이라고 회신하였다.

 

베넹은 1900 년 총독령은 니제르 군직할지와 베넹과의 경계를 니제르강 좌안으로 정한 것으로 강 자체와 강상의 하중도는 베넹의 관할이었으며 이 경계가 독립 후 베넹과 니제르의 국경이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니제르는 1900 년 총독령은 신설된 군 직할지의 위치와 영역을 지칭한 것일 뿐이며 군직할지와 베넹과의 경계는 1901 년 9 월 7 일자 프랑스 식민지 장관 서한에서 확인된대로 니제르강의 수로라고 반박하였다. 재판부는 니제르의 주장을 수용하여 1900 년 7 월 총독령은 경계를 획정한 것이라기 보다는 신설되는 군직할지의 위치와 영역을 개괄적으로 규정한 것이고 1901 년 9 월 7 일자 식민지 장관 서한도 그 자체가 베넹 주와 군직할지 경계를 획정한 것은 아니나 서한 이전에 경계가 획정된 사실이 없었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된다고 인정하고 니제르강 좌안이 국경선이라는 베넹의 주장을 기각하였다(판결문 53~56).

 

베넹은 니제르강 좌안이 국경선이라고 1954 년 8 월 27 일자 니제르 부지사의 서한에서 확인되었다는 주장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동 서한 송부 전후의 사정을 검토한 결과 최초에 베넹 주의 한 군수가 하중도 관할 당국 파악을 위해 베넹 주지사에 문의하자 베넹 주지사는 1900 년 7 월 총독령은 두 주간의 경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이 문제를 니제르 주와 차제에 해결하고자 하니 하중도의 관할 당국 실태 및 관할 연원에 대해 조사 보고하라고 지시하였으며 동 군수의 조사 결과를 니제르 부지사에게 전달하자 1954 년 8 월 27 일 니제르 부지사가 아무 논리나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문제의 서한을 발송했다고 설명하였다. 베넹 주지사는 이후 동 서한에 언급된 대로 두 주 간의 경계를 공식적으로 획정하자고 제의하였으나 니제르 부지사는 아무런 회신을 하지 않았다고 재판부는 소개하였다.

 

재판부는 이미 1900 년 7 월 23 일 총독령이 두 주간의 경계를 획정하지 않았다고 확인하였고 1954 년 8 월 27 일자 서한 발송 전후의 사정이 위와 같이 공식적인 경계 획정으로 인정할 수 있는 상황이므로 베넹의 주장은 수용할 수 없으며 당시 프랑스 법상 식민지 주 간의 경계 획정은 주지사가 아니라 대통령 또는 서부 아프리카 식민지 총독이었으므로 니제르 부지사는 경계 획정에 관해 아무 권한이 없었다는 점도 추가하였다.

 

니제르는 1934 년과 1938 년 불령 서부 아프리카 총독령을 인용하면서 이는 베넹 주와 니제르 주 간의 경계를 정식 권한에 따라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이므로 니제르의 국경선 주장의 근거가 된다고 강조하였다. 재판부는 이 총독령은 주와 군의 경계를 획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총독의 결정이며 니제르와 베넹 모두 그의 관할 하에 있는 식민지의 주이므로 이 총독령은 베넹이 폄하하는 바와 같이 단순히 베넹 주 내부의 행정 구역 경계에 관한 베넹 주 내부 문서가 아니라 식민지 주 사이의 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문건에 해당하고 따라서 이 총독령을 근거로 니제르와 베넹 주 간의 경계는 니제르강의 수로라고 인정하였다. 재판부는 그러나 강의 흐름이라는 표현이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므로 이 총독령을 근거로 주 간의 경계선이 강상의 중간선인지 최심선인지 등의 구체적인 경계선은 결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para. 68~74).

 

2) 실효적 지배에 의한 경계 획정 가능 여부

 

     재판부는 위와 같은 사정상 식민지 시대의 입법 및 행정 조치에 근거하여 경계선을 획정할 수 없다고 결론짓고 분쟁 당사국이 제출한 실효적 지배 근거를 토대로 경계선을 획정할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1914 년 7 월 3 일 니제르 측의 Gaya 군수는 니제르강 맞은 편의 베넹 측 Kandi 군 군수에게 서한을 보내 강상의 하중도 관할 당국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최저 수위 시의 항행 가능한 최심선을 기준으로 경계를 나누자는 제안을 하였다. 이들은 실제 회동하여 향행 가능 최심선이 상부 당국에 의해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두 군의 경계로 하기로 합의하였다는 기록이 있었다(이하 1914 년 방식선).

 

하중도 중 제일 큰 Lété 섬은 Gaya 군 관할이 되었다. 1925 년 Kandi 군수는 자신 관할 하중도 3 개와 레테섬을 교환하자는 제안을 하였으나 답신을 받지 못하였다.  1914 년 방식을 기준으로 니제르강 양측의 郡 당국이 1954 년 8 월 27 일 니제르 부지사의 서한 발송시까지 시정 행위를 해온 점은 여러 증거로 입증되었다. 특히 레테 섬에 대해 니제르 주의 Gaya 군청이 조세를 징수하였고 인구 조사 및 목재 벌채 허가를 발급한 기록이 있었으나 베넹 측은 레테섬을 포함하여 항행 가능 최심선 기준으로 니제르 쪽에 있던 하중도에 대해 시정 활동을 하였다는 증거는 제출하지 못하였다.

 

1954 년 8 월 니제르 부지사가 니제르강 좌안이 경계선이고 강상의 하중도는 모두 베넹 주 관할이라고 회신한 이후 베넹측은 시정권을 주장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레테섬 주민에 대한 조세권을 두고 양측의 군청이 대립하기 시작하였다. 주 당국까지 개입하여 문제 해결을 시도하였으나 해결에 이르지 못하고 시정권 중복 행사가 계속되었다. 재판부는 제출된 자료를 종합하여 판단할 때 1914 년부터 1954 년까지는 1914 년 방식선이 보편적으로 준수되어 항행 가능로가 양측의 경계선으로 간주되었으며 그 결과 레테섬을 포함하여 항행로 좌측의 하중도에 대해서는 니제르 주가 시정권을 법적 또는 사실적인 시비를 받지 않고 행사하였다고 인정하였다. 항행로 우측의 하중도는 베넹 주가 관할하였으며 이는 1925 년 관할 3 개섬과 레테섬을 교환하자고 니제르 주에 제안한 것에서도 확인된다고 재판부는 이해하였다. 1954 년부터 1960 년 독립시까지의 기간 중에는 레테섬에 대한 시정권이 중복되고 이따금씩 권한 과시를 위한 시정 행위가 이루어지기도 하였으나 1954 년 전까지는 의심할 여지없이 니제르에 의해 수행되었던 행정권이 실효적으로 베넹측에 이전되었다는 증거는 없다고 확인하였다(para. 98~100).

 

베넹은 1914 년 방식선은 현지 군청의 잠정적이고 실무적인 약속에 불과하며 권리로서 행사한다는 인식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실효적 지배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반박하였다. 재판부는 PCIJ 의 Legal Status of Eastern Greenland 사건233에서 주권자로서 행동한다는 의지와 의도가 실효적 지배에 관한 요소라고 확인되기는 하였으나 국제법의 개념을 식민지 법에 그대로 단순히 이식할 수는 없으며 uti possidetis juris 원칙을 적용하는 재판부의 임무는 이 사건 분쟁 당사국이 관할권을 행사하였다고 주장하는 지역에 대해 실제로 행정권을 행사한 주체가 베넹 주인지 니제르 주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para. 102).

 

3) 니제르 강상의 국경선 획정

 

     재판부는 이상의 심리를 근거로 베넹과 니제르 간의 국경은 양국 독립 당시의 니제르강 항행로였으며 동 항행로를 기준으로 양국이 자국 지역에 속한 하중도에 대해 영유권을 보유한다고 일단 결정하고 항행로 상의 어느 선, 즉 독립 당시의 최심선의 위치에 대해 심리하였다. 베넹은 퇴적에 의해 최심선이 수시로 변동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니제르는 지난 60 여년간 항행로의 위치에 큰 변화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1896 년 제작 지도, 1926 년 및 1932 년 식민지청 관리의 현지 조사 보고서, 1967 년 네덜란드 회사의 니제르강 항행성 보고서, 1975 년 항공 사진 등을 증거로 제출하였다.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상의 항행로가 사실상 동일하거나 매우 유사하다고 확인하고 1967 년 네덜란드 회사의 니제르강 항행 보고서에 기재된 최심선의 좌표대로 니제르강의 최심선을 확정하고 이를 국경으로 인정하였다. (para. 108~114).

 

니제르강에는 베넹과 니제르간 건설비를 균등 부담하고 공동 관리 중인 교량이 2 곳 있었다. 베넹은 이를 이유로 교량의 국경선은 중간선이 되어야 한다고 항변하였으나 재판부는 교량 건설비 부담 비율과 관리 방식이 반드시 국경 획정과 연계되는 것은 아니고 강 표면상의 국경은 최심선인데 바로 위 교량의 국경이 돌연 중간선으로 변경된 후 다시 최심선을 복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훈시하고 베넹의 주장을 기각하였다

 

 

4) 메크루강 국경

 

     베넹은 메크루江이 식민지 시절의 베넹 주와 니제르 주간의 경계였으므로 uti possidetis juris 원칙에 따라 메크루 강이 국경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니제르는 메크루강 전체가 국경이 되는 것은 아니며 일부 구간은 1907 년 3 월 2 일 총독령에 따라 직선이 되어야 한다고 반박하였다.

 

니제르에 따르면 불령 서부 아프리카 총독이 1907 년 3 월 2 일 북세네갈 주와 니제르 주의 경계를 변경하면서 베넹 주에 속해 있던 도(cercle)의 일부를 직선으로 분할하여 북세네갈 주와 니제르 주에 편입하였으며 이 총독령에 의해 설정된 경계선이 일부 수정을 거쳐 1960 년 베넹과 니제르 독립 시까지 계속 유지되어 왔으므로 메크루江 주변의 양국 국경선은 총독령이 설정한 바와 같이 일부 직선 구간과 메크루江의 수로가 된다는 것이었다. 베넹은 1907 년 3 월 총독령은 1919 년 3 월 오트-볼타 주 설치를 위한 대통령령에 의해 폐기되었으며 1927 년 8 월 31 일 총독령에 의해 오트-볼타 주와 니제르 주 간의 경계를 획정하면서 메크루江을 경계선으로 확정하였다고 반박하였다.

 

재판부는 1919 년 3 월 오트-볼타 설치령이 1907 년 총독령을 폐기한다는 기술도 없고 주 사이의 경계를 세밀하게 기술하지도 않았으며 오트-볼타 주에 속하게 되는 cercles(道)의 경계로 신설 오트-볼타 주의 경계를 삼았다고 확인하였다. 재판부는 당시 식민지 내 새로운 주의 신설은 프랑스 대통령의 권한이었지만 도의 신설,  경계 획정은 식민지 총독의 권한이었으며 1926 년 12 월 26 일 총독은 베넹 주의 메크루江 맞은 편에 있는 도를 니제르에 편입하면서 메크루江을 도의 경계로 획정하였다고 확인하였다.

 

재판부는 1927 년 8 월 31 일 당시 총독이 오트 볼타 주와 니제르 주 간의 경계를 획정하면서 기존 도의 경계를 기준으로 획정하였으며 이 총독령은 총독의 권한 내에서 정당하게 행사된 것으로서 1927 년 이후 메크루江은 불령 서부 아프리카의 오트 볼타 주, 니제르 주, 베넹 주 경계선이 되었다고 정리하였다. 이는 1927 년 이후 발행된 식민지 당국의 지도와 후속 행정명령, 고지 등에서 광범위하게 확인된다고 재판부는 첨언하고 식민지 시대의 경계선이 독립 국가의 국경선이 된다는 uti possidetis juris 원칙에 따라 메크루江이 베넹과 니제르의 국경이라고 결론내렸다(para. 129~139).


베넹은 메크루江의 중간선이 국경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니제르는 이에 대해 특별한 입장을 개진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Kasikili/Sedudu Island 사건에서 국제 조약이나 협정은 강으로 국경을 정할 경우 대개 항행 가능한 하천은 최심선, 그렇지 못한 하천은 중간선으로 정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234있음을 인용하면서 양국 공동 조사서 등에 메크루江이 항행 가능하지 않다고 확인하고 있으므로 중간선을 양국 국경으로 결정하겠다고 판시하였다(para. 143~145).


베넹과 니제르는 자신들이 해당 지역에 대해 시정권을 행사하였다고 주장하고 실효적 지배 행위에 의해 해당 지역이 자국령이라는 입장을 개진하였으나 재판부는 실효적 지배론은 법적인 영유권이 존재하지 않거나 명확하지 않을 경우 부차적으로 적용하는 개념이고 법적인 영유권에 우선할 수 없다고 설명하고 이 사건에서 이미 메크루江이 식민지 시대의 적법한 조치에 의해 경계로 확정되었음이 확인되었으므로 굳이 실효적 지배론을 심리할 실익이 없다고 논시하고 더 이상 심리하지 않았다(para. 141).


(작성자 :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

 

 


1) 1933, PCIJ, Series A/B, no. 53, pp. 45~46

 

2) ICJ Reports 1999(II), p. 1062, para.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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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국제법 판례 종합해설 1,2권"(저자 김승호)의 해당사건 부분을 저자의 동의하에 일부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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