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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risdictional Immunities of the State 사건 (Germany v. Italy, Greece, 2012. 2. 3. 판결) 본문

Jurisdictional Immunities of the State 사건 (Germany v. Italy, Greece, 2012. 2. 3. 판결)

국제분쟁 판례해설/국제사법재판소(ICJ) 판례 2019. 10. 1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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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사건 개요 및 배경

 

     이 사건은 이태리의 나치 독일 희생자 유가족 등의 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태리 법원이 독일의 배상 의무를 인정하였고 같은 취지의 그리이스 법원 판결을 이태리 내에서 집행할 수 있다고 판결한 것이 국가는 타국의 사법권으로부터 면제된다는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시된 사건이다.  1943 년 9 월 무솔리니 정권이 몰락한 후 이태리가 연합국에 가담하자 독일군은 1943 년 10 월 이태리 전역을 장악하고 종전시까지 학살, 강제 노역 등 각종 잔학 행위를 자행하였다.

 

수십만의 이태리 군인을 포로로 대우하지 않고 독일 및 기타 점령 지역에 있는 강제 노역장으로 추방하여 노동력을 착취하였다. 1947 년 2 월 10 일 연합국과 이태리는 평화 조약을 체결하여 독일 내 이태리 자산은 적국 자산으로 취급하지 않고 강제로 탈취된 이태리 자산은 연합국이 제정할 절차에 따라 반환하기로 하였다. 1953 년 독일은 나지 희생자 배상법을 제정하였으나 배상 대상 행위와 수혜자를 엄격히 규정한 탓에 다수의 이태리人 희생자가 동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1961 년 6 월 독일과 이태리는 독일의 대 이태리 미납 채무 정리 약정을 체결하여 독일이 총액을 일괄 지불하는 대신 이태리는 독일의 개인, 법인을 이태리 개인, 법인의 개별적인 채권 확보 소송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로 하였다.

 

또한 나치에 희생된 이태리인 배상 약정을 체결하여 역시 일정 총액을 일괄 지불함으로써 동 건을 최종 정리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약정에 의해 이태리의 개인이나 법인은 대 독일 채무나 나치의 박해에 대한 배상을 개별적으로 독일에게 청구하지 못하게 되었다. 2000 년 8 월 2 일 독일은 기억, 책임 및 미래 재단 설치법(이하 2000 년 배상법)을 제정하여 나치 강제 노역 희생자들에 일정액을 배상하기로 하였으나 당사자에게 직접 지불하는 대신 협력 관계에 있는 단체들을 통해 간접 지불하기로 하였다. 또한 전쟁 포로는 국제법에 의한 대우를 받았다는 이유로 지불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이태리군은 포로 대우를 받지 못했으므로 다수의 전직 이태리 군 복무자들이 2000 년 배상법에 의거하여 배상을 신청하였으나 독일 당국은 당시 나치 독일은 주권국의 정식 군인 신분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민간인으로 분류할 수 있는 국제법상의 권한이 없었으므로 당시 이태리군은 전쟁 포로 신분을 잃은 것이 아니며 따라서 2000 년 배상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에 항의하는 다수의 소송이 독일 법원에 제기되었으나 패소하였고 2004 년 6 월 28 일 독일 헌법재판소는 전쟁 포로를 배상 대상에서 제외한 2000 년 배상법이 위헌이 아니라고 판시하기도 하였다.

 

유럽 인권 재판소에도 유사한 소송이 제기되었으나 관할권이 없다는 이유로 심리를 거절당했다. 1944 년 체포된 후 종전시까지 독일 화약 공장에서 강제 노역에 처해진 Luigi  Ferrini 라는 이태리人이 1998 년 9 월 23 일 독일에 대한 배상 청구 소송을 이태리 Arrezo  지방법원에 제기하였으나 독일은 주권 국가로서 타국의 사법권으로부터 면제된다는 이유로 패소하였다. 2001 년 11 월 16 일 이태리 플로렌스 지방 고등법원 역시 청구인의 항소를 기각하였으나 2004 년 3 월 11 일 이태리 대법원은 국가의 사법 면제는 국제 범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논리로 파기 환송하였다. 플로렌스 지방 고등법원은 2011 년 2 월 17 일 국가의 사법 면제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국제 범죄에 대해서는 원용할 수 없다는 논리로 독일에 대해 배상 판결을 하였다.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도 확인된 이후 12 건의 유사 소송이 제기되었고 독일의 관할권 부재 항변에도 불구하고 이태리 대법원은 나치 독일의 추방 및 강제 노역 범죄에 대해 관할권이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독일은 그리이스 점령 기간 중 다수의 민간인을 학살하였다. 1995 년 일단의 그리이스 학살 희생자 유족들은 독일에 대한 배상 청구 소송을 그리이스 법원에 제기하여 대법원까지 올라간 후 승소하였다. 그리이스 형법상 외국인에 대한 판결 집행은 법무부 장관 승인 사항이었으나 그리이스 법무장관이 유가족의 집행 청구 승인을 계속 지연하여 그리이스 내에서 이 판결이 집행되지 않은 상태로 있었다. 유가족은 이 문제를 유럽 사법재판소에 제소하였으나 동 재판소는 국가 사법 면제(State Immunity) 원칙을 이유로 관할권을 사양하였다.

 

유가족은 독일 법원에도 제소하였으나 독일 대법원은 역시 사법 면제를 근거로 그리이스 법원의 판결을 부인하였다. 이태리 법원에서 독일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자 그리이스 유가족들은 그리이스 법원 판결 집행을 청구하는 소송을 이태리 플로렌스 고등법원에 제소하였으며 동 법원은 2006 년 6 월 13 일 그리이스 법원의 판결을 이태리에서 집행할 수 있다고 판결하였다. 그리이스 유가족은 이 판결을 근거로 이태리 북부 관광지 Como 호수변에 있는 독일 문화원 Villa  Vigony 양도 청구를 관할 등기소에 제기하였다. 등기소는 이 사건이 ICJ 판결된 후에 동 청구 승인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가부 판단을 연기하고 있었다.

 

독일은 이태리가 2 차 대전시 독일의 국제 인권법 위반 행위에 대한 이태리인의 민사 소송을 이태리 법원이 접수하여 심리한 것과 그리이스 법원의 판결을 이태리 내 독일 자산에 대해 집행할 수 있다고 이태리 법원이 승인한 것은 독일이 국제법상 향유할 수 있는 국가 사법 면제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2008 년 12 월 23 일 ICJ 에 이태리를 제소하였다. 제소 근거는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관한 유럽 협약 1 조였다.

 

나. 주요 쟁점 및 판결

 

1) 국가 사법 면제 원칙의 존부 및 범위

 

     양국간의 협정에 상대국을 자국의 사법 심리 대상에서 면제한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한 것이 없고 국제 협약에도 이 원칙이 명기되어 있지 않으므로 재판부는 국가 사법 면제 원칙이 국제 관습법에 해당하는지 살펴보았다. 재판부는 UN 국제법 위원회(ILC)가 사법 면제는 국제 관습법상의 일반 원칙으로서 수용되었고 현재 공고히 착근된 국가 관행이라고 언급345한 점을 인용하였으며 사법 면제(State Immunity)는 UN 헌장 2(1)조에 명시된 국가 주권의 동등성 원칙에서 유래하는 것으로서 국제법과 국제 관계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았다. 국제법 질서의 핵심적인 원칙의 하나이며 영토 주권성을 토대로 영토 내에서 발생하거나 존재하는 사건과 대상에 대해 국가가 사법 관할권을 행사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보았다. 

 

독일과 이태리도 국가의 사법 면제가 국제 관습법이라는 점은 인정하였으나 독일은 행위 당시, 즉 2 차 대전을 기준으로 사법 면제의 범위와 정도를 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이태리는 이태리 법원 판결 시점을 기준으로 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태리의 이러한 입장은 2 차 세계대전 당시의 국제 관습법은 국가의 사법 면제를 폭넓게 인정하였지만 시대의 발전에 따라 이태리 법원의 판결 당시에는 생명 및 재산 손상 행위나 인권 유린 등 심각한 국제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의 사법 면제가 제한되는 것으로 국제 관습법이 발달했다는 점을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재판부는 판결이 청구된 사항이 이태리 법원의 행위에 관한 것이므로 이태리 법원 심리 당시의 국제법을 이 사건 재판에 적용해야 할 것이므로 그 당시에 존재하고 있던 사법 면제에 관한 법을 조사하고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독일 및 이태리와 재판부는 국가의 행위는 상무적 행위(acta jure gestionis)와 통치적 행위(acta jure imperii)로 나눌 수 있으며 전자는 타국의 사법 심리 대상이 될 수 있고 사법 면제 원칙이 적용되는 것은 후자에 한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통치적 행위의 불법성 여부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독일은 자신의 원인 행위가 불법이었다는 점도 인정하였다.

 

학살, 추방 및 강제 노역 등 독일의 원인 행위가 통치적 행위에 속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양국의 의견은 일치하였으나 독일은 모든 통치적 행위는 사법 면제 대상이라고 본 반면 이태리는 통치적 행위라 할지라도 특정국의 영토 내에서 사망 또는 신체적 손상 및 재산상 손실을 초래한 행위는 해당국의 사법 관할권에서 면제되지 않으며, 행위 발생지와 상관없이 학살, 인권 유린 등 국제법에 대한 심각한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사법 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독일의 원인 행위는 이 범주에 속한다는 것이 이태리의 입장이었다.

 

재판부는 유럽 협약의 경우 군대의 행위에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 31 조 348가 있는 반면 UN 협약은 이와 같은 군대 예외 규정이 없기는 하나 UN 협약이 UN 총회에 보고될 당시 무력 충돌 상황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군사 행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일반적인 양해 아래 초안이 작성되었다고 언급된 점을 환기하였다. 재판부는 UN 협약을 비준한 노르웨이와 스웨덴도 무력 충돌시의 군사 활동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선언하였음을 환기하고 UN 협약 12 조는 국제 관습법이 무력 충돌시 자국 내에서 발생한 타국 군대의 살상, 대인.대물 피해 행위에 대해 국가 면제를 부인한다는 논거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재판부는 국가 사법 면제를 국내법에 규정하고 있는 10 개국 중 9 개국이 자국내에서 행해진 외국 정부의 불법 행위(살인, 대인. 대물 피해 등)에 대해서는 사법 면제를 인정하고 있지 않으나 외국 군대의 동 행위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사법 면제를 인정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등 입법례가 혼재한다고 소개하였다. 미국, 카나다, 호주, 일본 등 7 개국은 외국 군대의 자국내 불법 행위를 포괄적으로 국가 사법 면제 대상에서 배제하지는 않았으나 어느 국가 법원도 현재까지 무력 충돌시 외국 군대의 자국 내 행위에 대해 국가 사법 면제를 적용하지 않도록 요구받은 예가 없다고 설명하였다.

 

재판부는 각국 법원의 판례도 무력 충돌시 국내에서 행해진 외국 군대의 행위는 비록 자국민에 대해 사망, 신체적 손상, 재산상 손실을 초래하였어도 사법 면제 원칙을 적용하여 왔다는 점이 인정된다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관행은 학설(opinio juris)에 의해서도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무엇보다 이와 반대되는 판례가 없는 점은 주목할만하다고 언급하였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재판부는 무력 충돌시 자국민 피해를 초래한 외국 군대의 행위에 대해서는 사법 면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 관습법으로 확인되며 따라서 독일의 면제권을 부인한 이태리 법원의 판결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para. 69~71, 77~79).

 

2) 사망, 신체 손상, 재산 손실 행위에 대한 사법 면제 적용 여부

 

     이태리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개인에 대한 피해나 재산상의 손실 보상을 위한 사법 절차에서는 국가 면제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1972 년 국가 면제에 관한 유럽 협약(European Convention on State Immunity) 11 조 346와 국가 및 그 재산의 사법 면제에 관한 UN 협약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Jurisdictional  Immunities of States and Their Property) 12 조347를 제시하였다.

 

3) 심각한 국제법 위반 행위에 대한 사법 면제(State Immunity) 적용 여부

 

      이태리는 학살, 추방, 강제 노역 등 반 인륜 범죄에 해당하는 심각한 국제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에 대한 사법 면제가 부인된다고 주장하고 그 근거로 첫째 이들 범죄는 보편적인 관할권이 인정된 전쟁 범죄, 인도주의에 반한 범죄에 해당하고 둘째 독일의 행위는 성문법, 관습법에 우선하는 강행 규범(jus cogens)을 위반한 행위이며 셋째 이태리 법원의 관할권 행사는 이러한 범죄 피해자인 청구인을 보호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는 점을 제시하였다. 재판부는 이태리의 첫째 주장은 심각한 국제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에 대한 타국의 사법 면제가 부인, 제한된다는 수준으로 국제 관습법이 발달했다는 주장이라고 이해하고 사실 여부를 다각적으로 검토하였으나 부정적인 결론에 도달하였다.

 

재판부는 위와 같은 취지로 판결한 국내 법원 판례가 있는지 살펴보았으나 유사한 소송이 제기된 카나다, 프랑스, 슬로베니아, 뉴질랜드, 영국 법원에서 모두 기각되었고 국가에 대한 사법 면제와 관련된 국내법을 유지하고 있고 국가 중에서 위반 행위의 심각성을 기준으로 사법 면제의 부인이나 제한 규정을 두고 있는 나라도 없다고 확인하였다. UN 사법 면제 협약에도 해당 조항이 없으며 1999 년 UN 국제법 위원회는 동 협약문 기초 당시에 이 문제를 검토하기 위한 실무위원회를 구성하였으나 논의 결과 이를 국제법으로 성문화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결론짓고 UN 사법 면제 협약을 2004 년 현재안대로 채택하였다고 언급하였다. 재판부는 유럽 인권 재판소에서도 이태리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하는 항변이 기각되었음도 소개하고 이상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현행 국제 관습법상 국가는 국제 인권법, 전쟁법 등을 심각하게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사법 면제권이 박탈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다만 이는 국가에 대한 면제일 뿐 그러한 행위를 자행한 관리에 대해서는 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첨언하였다(para. 83~91).


재판부는 반 인륜 행위를 금지하는 강행 규범은 사법 면제라는 국제 관습법에 우선한다는 이태리의 두 번째 주장은 강행 규범과 사법 면제와의 상충을 전제로 하는 것이나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단언하였다. 사법 면제는 본질상 절차적인 것으로서 일국의 법원이 타국에 대해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에 국한된 것이고 해당 행위의 합법성 여부와는 무관하다고 언급하였다. 따라서 2 차 대전 당시의 독일 행위에 관한 심리에 현대 국제법의 사법 면제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법의 소급 적용에 해당하지 않으며 사법 면제 원칙을 인정하는 것이 강행 규범 위반 행위가 합법이라고 인정하는 것도 아니라고 설명하였다.

 

재판부는 이 사건 경우 2 차 대전 당시에도 강행 규범이었던 민간인 학살, 추방, 강제 노역 금지를 독일이 불법적으로 위반하였고 이 위반 시비를 심리하기 위한 관할권을 이태리 법원이 보유하고 있는지 여부를 사법 면제 원칙을 적용하여 결정하는 것은 이미 위반된 강행 규범과는 아무런 충돌 관계에 있지 않다고 설시하였다.  원래의 불법 행위 대신 배상 의무를 대입해도 충돌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재판부는 언급하였다. 배상 의무는 위법 실행 수단과 관련된 규칙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국가에 대한 사법 면제는 동 규칙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거의 모든 평화 조약과 전후 처리 관행에서 볼 때 배상을 요구하지 않거나 총액 정산을 하였으며 희생자 개개인에 대한 충분한 배상이 필수적으로 준수해야 할 규범으로 수용되지는 않았다고 판단하였다.

 

이태리는 2 차 대전 후 독일에 대한 배상 요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재판부는 국가의 위법 행위에 대한 배상이 반드시 피해가 개개인별로 이루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재판부는 사법 면제에 관한 국내법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의 해당 법에도 강행 규범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사법 면제를 제한한다는 규정이 없다는 점도 첨언하였다. 이상을 토대로 재판부는 이태리 법원이 심리하는 독일의 2 차 대전시 행위가 강행 규범 위반이라고 할지라도 사법 면제 원칙을 적용하는데에는 영향이 없다고 판시하였다(para. 92~97).


이태리는 독일이 피해자 배상을 거부하였으므로 최후의 구제 수단(last resort)으로서 이태리 법원이 사법 면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하였으나 재판부는 국가의 사법 면제권이 실효적인 대체 수단이 있으면 인정되고 없으면 부인되는 국제적인 관행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축하였다. 사법 면제는 불법 행위 국가의 국제적 책임성과 배상 의무와는 별개의 개념이라고 지적하였다. 국내 입법 사례나 판결례를 보아도 사법 면제에 이러한 전제 조건을 부과한 례는 발견되지 않고 UN 면제 협약이나 유럽 면제 연합에도 관련 규정이 없다고 확인하였다.

 

재판부는 최후 구제 수단론은 피해 배상에 대한 해결 방안이 관련 정부 차원에서 논의되는 경우 합의 가망성이 사라지는 시점에서는 사법 면제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인데 해당 사건을 심리하는 국내 법원은 정부간 협의 주체가 아니어서 그 시점이 언제인지 알 수 없으므로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논리라고 지적하였다. 더구나 정부간에 총액 정산이 합의된 경우 법원이 소송 제기된 개별 배상 시비의 배상 필요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총액 배상금을 수령한 정부의 배분 방식 등을 법원이 조사해야 하는데 수령 국가가 총액 배상금을 개인별 배분이 아닌 경제 건설 등에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면 피해 개인은 배상 국가에 대해 여전히 청구권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이태리의 최후의 구제 수단 주장을 기각하였다

(para. 101~103).

 

4) 그리이스 법원 판결 집행 승인

 

     그리이스 법원이 독일군에 의해 학살된 희생자 유가족에 대한 독일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였으나 그리이스 정부가 이를 집행하지 않자 해당 유가족들은 이태리 법원에 집행 승인 신청을 하여 허락을 받은 후 이태리 북부 Como 호수변에 위치한 독일 문화원 건물에 대한 명의 변경 신청을 해당 등기소에 제출하였다. 독일은 이태리 법원의 집행 승인 판결이 국가에 대한 사법 면제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이스 법원의 배상 판결 자체가 사법 면제 원칙 위반이므로 이의 집행을 승인한 것 역시 동 원칙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우선 재판부는 독일 문화원 건물이 집행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UN 면제 협약 19 조는 판결 집행 대상을 해당 국가의 명시적 동의가 있는 재산, 동 목적으로 지정한 재산, 정부의 상업적 용도에 쓰이는 재산으로 제한하고 있는바 첫째와 둘째는 독일이 그리한 바 없으므로 이 사건에서 해당이 없고 문제의 독일 문화원은 상업적 용도 재산이 아닌 것이 명백하므로 집행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논시하였다(para. 116~120).

 

재판부는 이태리 법원이 그리이스 법원 판결의 사법 면제 원칙 준수 여부를 심리하는 것은 이 사건 소송 당사국이 아닌 그리이스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판단을 수반하므로 가능하지 않다고 보았다. 이태리 법원이 그리이스 법원 판결의 집행을 승인한 행위가 사법 면제 원칙에 위배되는지만 국한하여 심리하겠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법원이 외국 법원 판결 집행 승인 청구를 수용, 기각하는 경우 해당 법원은 동 사건이 자신에 의해 판결된 것과 같은 효과를 외국 법원의 판결에 부여하게 된다고 언급하면서 재판부는 따라서 해당 법원의 심리는 외국 법원 판결의 대상이 된 행위 국가에 대해 시행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외국 법원 판결 집행 승인 청구를 접수한 법원은 동 판결의 대상이 된 사건의 본질을 살펴 판결의 대상이 된 행위 국가가 사법권으로부터 면제권을 향유하는지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해당 법원 자신이 외국 법원이 판결한 원 사건을 심리하게 된 것처럼 생각하고 국제법상 행위 국가에 대해 사법 면제를 부여해야 할 의무는 없는지 숙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러한 견지에서 이태리 법원이 그리이스 법원의 판결에 대해 이태리 내에서의 집행을 승인한 것은 원 사건이 이태리 법원에 청구되었을때 사법 면제를 인정하지 않은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갖는 것으로서 독일의 사법 면제권을 부당하게 부인한 것이라고 판시하였다(para. 127~131).

 

(작성자 :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


1) Yearbook of the International Law Commission, 1980, vol. II(2), p. 147, para 26

 

2) 11. A Contracting State cannot claim immunity from the jurisdiction of a court of another Contracting State in proceedings which relate to redress for injury to the person or damage to tangible property, if the facts which occasioned the injury or damage occurred in the territory of the State of the forum, and if the author of the injury or damage was present in that territory at the time when those facts occurred.

 

3) 12. Personal injuries and damage to property Unless otherwise agreed between the States concerned, a State cannot invoke immunity from jurisdiction before a court of another State which is otherwise competent in a proceeding which relates to pecuniary compensation for death or injury to the person, or damage to or loss of tangible property, caused by an act or omission which is alleged to be attributable to the State, if the act or omission occurred in whole or in part in the territory of that other State and if the author of the act or omission was present in that territory at the time of the act or omission.

 

4) 31. Nothing in this Convention shall affect any immunities or privileges enjoyed by a Contracting State in respect of anything done or omitted to be done by, or in relation to, its armed forces when on the territory of another Contracting 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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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국제법 판례 종합해설 1,2권"(저자 김승호)의 해당사건 부분을 저자의 동의하에 일부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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