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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사건 개요
이 사건은 과거 국내 법원에서 판결된 분쟁과 판결 후 ICSID 중재가 신청된 분쟁 간의 동일성 여부가 쟁점이 된 사건이다.
청구인 Empresas Lucchetti사는 칠레 기업으로서 페루 내에 파스타 생산 업체인 Lucchetti Peru사를 설립하였다. 두 회사 모두 청구인이다. Lucchetti 사는 1997년 리마시 당국으로부터 Pantanos de Villa 야생동물 보호구역 인근에 파스타 공장 건축 허가를 받았으나 시 당국은 이후 동물 보호를 이유로 이 건축 허가를 취소하였다. Lucchetti사는 1998년 페루 법원에 취소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하여 1999년 승소하였고 약 2년간 공장을 운영하였다. 리마市 당국은 패소 이후에도 야생동물 보호구역 보존을 위해 파스타 공장 폐쇄를 지속적으로 시도하였으며 페루 법원이 부당하게 판결한 정황이 노출되자 리마시 의회는 2001년 시 조례 258호, 259호를 발령하여 Lucchetti사의 파스타 공장 운영 허가를 취소하고 공장을 폐쇄 조치하였다. Lucchetti사는 칠레-페루 투자협정을 근거로 리마시의 조치는 공정․공평 대우, 수용 금지 의무 위반이라고 2002년 12월 ICSID에 중재를 신청하였다. 페루는 ICSID의 중재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나. 주요 쟁점
페루는 칠레-페루 투자협정은 2001년 8월 3일에 발효되었고 발효 이전에 발생한 분쟁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으므로 1998년에 이미 시작된 이 사건은 투자협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Lucchetti사는 1998년 사건은 1999년 법원 판결로 종료된 것이며 이 사건은 2001년 8월 22일 제정된 리마市 조례 258, 259호를 다투는 것이므로 투자협정이 적용되며 따라서 ICSID의 관할권이 인정된다고 반박하였다.
리마시의 주장은 이 사건은 1998년 제소부터 계속되어 온 하나의 사건이라는 것이고 Lucchetti사는 1998년 제소는 이미 종결된 별도의 사건이고 이 사건은 2001년 시 조례의 제정으로 촉발된 별개의 사건이라는 주장이다. 중재판정부는 동일 분쟁 여부는 분쟁의 대상이 되는 문제(subject matter)가 동일한지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이전 분쟁을 발생시켰던 사실과 고려가 이후 분쟁에서도 중심에 있는지를 판단하면 될 것으로 보았다. 중재판정부는 Lucchetti사 파스타 공장 폐쇄를 명령한 시 조례 259호 서문에 그 같은 결정이 불가피한 사정과 사태 발단부터 폐쇄 결정에 이르게 된 과정을 길게 서술하고 있고 Lucchetti사 공장의 허가, 운영 등에 관한 리마市의 이전 명령이나 조치 등을 언급하고 있는 점을 주목하였다. 또한 시 조례 258, 259호는 야생동물 보호구역의 보존의 중요성, 보존 관리를 위한 개발 제한, 개발시 엄격한 환경규제 적용 등을 명시적인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259호에 언급된 1998년 공장 운영 허가권도 야생동물 보호구역에 미치는 환경 영향 평가 실시, 유해 물질 배출 제한 등의 조건을 부과한 점도 주목하였다.
이에 비추어 중재판정부는 1997/1998년 분쟁을 야기한 사실과 고려는 시 조례 259호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실제로 259호에는 1998년 운영 허가권을 확인한 법원의 결정이 법관의 부패에 의해 발부된 정황을 언급하기도 하였다(판정문 50-53). Lucchetti사는 해당 공장이 2001년 시 조례 공포 이전 이미 2년 이상 정상 운영 중에 있었으므로 두 사건간 상당한 시간 간격이 있으며 1998년 법원 판결은 이전 분쟁을 종결시킨 사법 결정으로서 구속력을 인정해야 하는 res judicata라고 항변하였다. 이전 사건 당시 양국간 투자협정이 없었으며 이후 사건은 양국간 투자협정상의 권리 의무 위반을 다투는 것이므로 양자는 별개라고도 주장하였다.
중재판정부는 두 분쟁이 시간 간격이 있다고 해서 별개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며 이전 분쟁이 확실히 종료되었다는 점이 증거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이 사건의 경우 법원 판결 이후 리마시는 환경 규정을 Lucchetti사 공장에 적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하여 온 점이 인정되며 리마시 스스로 동 분쟁이 종결되었다고 인식하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법원 판결의 기판력(res judicata)에 대해서도 제시된 증거가 이전의 분쟁이 계속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 주고 있으므로 판정부의 결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법원 판결의 부정 가능성에 대해서는 중재판정부가 다룰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56-57). 투자협정의 권리 의무를 다투는 것이므로 새로운 분쟁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와 같은 사실이 투자협정에 명시된 시적 관할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고 지적하고 이 사건에 대한 관할권이 없다고 판시하였다(59).
다. 평가 및 해설
1) 분쟁의 동일성
투자협정에서는 분쟁이 ICSID와 같은 국제중재에 회부되기 전에 갖추어야 할 제한 요건을 규정하여 놓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국내 사법 구제와 국제 중재 중 하나를 불가역적으로 선택하게 하는 소위 fork in the road 조항이다. 또는 국내에서 진행 중인 사법 절차가 소진된 후 국제 중재를 신청할 수 있게 하는 국내 구제 소진 조항도 있다.
동일한 분쟁이 복수의 구제 절차에 회부될 수 있도록 허락할 경우 법률관계의 미확정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거나 국내 사법 절차가 무시되는 수가 있으며 국제중재에 사건이 집중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사법기관의 판단결과에 구속되어야 하는지, 선행 판단을 어느 정도까지 고려해야 하는지 등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국내 사법 절차 등에서 심리가 끝난 사건 또는 심리가 진행 중인 사건이 새로운 사건인 것처럼 ICSID에 중재 신청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판정부는 중재 신청된 분쟁과 이전의 분쟁이 동일한지 여부를 심리하여 중재 관할권 존재 여부를 심리해야 한다.
이러한 분쟁 동일성 심리와 관련하여 흔히 제기되는 쟁점은 동일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투자협정은 서로 다른 사법 절차에 회부된 분쟁의 동일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분쟁 동일성이 제기된 ICSID 중재 판정이 여러 건 있지만 기준을 제시한 성문의 근거가 원용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기준이 기재된 조약도 없어 보인다. 동일성 여부 판단의 기준은 중재 판정의 누적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판정을 보면 분쟁의 대상이 된 문제, 분쟁을 발생시킨 사실과 심리상의 고려를 기준으로 동일성 여부를 판단하기도 하였고 사법 심판을 청구하게 된 기본적인 근거, 이유의 동일성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기도 하였다. 분쟁 내용이 동일하더라도 특정 계약 위반 여부를 다투는 분쟁과 투자협정 위반을 다투는 분쟁은 서로 다른 분쟁으로 인정하는 것이 추세이다.
2) 관련 판례
분쟁 동일성 판단 기준과 관련하여 이 사건 중재판정부는 동일 분쟁 여부는 분쟁의 대상이 되는 문제(subject matter)가 동일한지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이전 분쟁을 발생시켰던 사실과 고려가 이후 분쟁에서도 중심에 있는지를 판단하면 될 것으로 보았다. Jan de Nul vs. Egypt 사건(ARB/04/13) 판정부는 이전 분쟁을 야기한 사실과 고려가 후속 분쟁의 중심적인 요소로서 계속된다면 이는 별개 분쟁이 아니라 동일 분쟁이라는 원칙 자체는 유효하다고 보았다.
해당 사건의 경우 이전 분쟁은 후속 분쟁의 원천 중의 하나일 뿐이고 그것도 중심되는 원천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현재의 분쟁은 새로운 분쟁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하였다(결정문 123-128). 반면에 Pantechniki vs. Albania 사건(ARB/07/21) 판정부는 알바니아 법정에 제소된 건과 ICSID 중재가 신청된 건의 근본적인 기반이 알바니아 건설부와의 계약상 다툼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므로 두 사건은 동일 사건이고 이미 알바니아 법원에 제소되었으므로 청구인은 다시 ICSID 중재를 이용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알바니아 법원이 부당하게 처리하여 공정한 사법 절차를 제공받을 투자자의 권리가 부인되었는지는 중재 청구할 수 있으며 실제로 이에 근거하여 중재 신청이 이루어졌으므로 본안심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판정문 66-68). H & H vs. Egypt 사건(ARB/09/15) 중재판정부는 청구인이 주장한 동일 분쟁 판별 요건 (당사자, 대상, 원인) 대신 Pantechniki vs. Albania 사건(ARB/07/21) 판례에 따라 청구의 근본적인 근거(fundamental basis of the claim)의 동일성 여부를 기준으로 사건의 동일성을 판단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판정부는 이 사건의 불법 수용 청구나 카이로 중재판정부 및 국내 법원에 제출된 청구는 모두 EGOTH가 청구인의 매수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을 근거로 제출된 분쟁으로서 청구의 근본적인 근거가 모두 동일하다고 이해했다(판정문 370-378).
SyC vs. Costa Rica 사건(ARB/12/4) 중재판정부도 동일 분쟁인지 여부를 밝히기 위해서 fundamental basis of claim 기준을 적용하였다. 판정부는 이 기준은 분쟁의 동일성 판단을 위해 우선 규범적 원천의 동일성 여부, 즉 분쟁을 발생시킨 근본적인 원인과 추구하는 구제 효과가 동일한 것인지를 살피고, 목적, 당사자, 행위 원인을 공유하는 다툼이 여타의 사법 구제에 회부되어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라고 보았다. 판정부는 이 사건에서 쟁점이 된 두 분쟁 모두 코스타리카의 자동차 점검 수수료 조정 약속 파기에서 발생한 것이고 추구하는 효과 역시 그로 인한 손실 보상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보았다.
계약 위반을 근거로 제기된 분쟁과 투자협정을 근거로 제기된 분쟁을 서로 다른 분쟁으로 인정한 판례로는
DLP vs. Yemen 사건(ARB/05/17)이 있다. 예멘의 국내 중재 절차에서 이미 판정이 난 사건이 ICSID에 중재 신청된 사건에서 중재판정부는 예멘 중재는 도로 건설 계약의 위반을 심리한 것이고 ICSID 중재는 예멘 중재 절차의 간섭, 강요에 의한 해결 약정 체결 등이 투자협정 위반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므로 동일 분쟁이 아니라고 확인하였다(판정문 136-137). Pantechniki vs. Albania 사건(ARB/07/21) 중재판정부는 알바니아 법원에 제소된 분쟁과 ICSID 중재 신청된 분쟁의 청구 원인이 동일하기는 하나 청구인은 알바니아 법원이 부당하게 처리하여 공정한 사법 절차를 제공받을 투자협정상의 투자자의 권리가 부인되었는지에 근거하여 중재 신청하였으므로 본안심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판정문 6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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