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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지속되던 튀르키예 독립전쟁과 관련한 문제를 종결하기 위하여 스위스의 로잔에서 1923. 7. 24. 튀르키예, 그리스 등 사이에 협정이 체결되었다(“로잔 협정”). 로잔 협정에는 그리스 내에 소재한 이슬람 교도의 재산 취급과 관련한 선언(Declaration)이 부속서 9로 첨부되어 있었는데, 해당 부속서 및 로잔 협정의 특정 조항의 적용과 관련하여 그리스와 튀르키예 사이에 이견이 발생하였다.2)
이에 따라 1926. 12. 1.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테네에서 별도의 조약(“본건 조약”)을 체결하였는데, 동 조약은 ‘조약을 적용할 의무’를 포함한 특정 권한을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을 위한 혼합 위원회(Mixed Commission for the Exchange of Greek and Turkish Populations)에 부여하였다.3)
한편, 본건 조약의 상세한 내용은 동시에 서명된 그리스-튀르키예 최종 의정서(GrecoTurkish Final Protocol, 이하 “의정서”)에 규정되었는데, 특히, 의정서 제4조는 “오늘 서명된 협정에 의해 위임된 새로운 의무 및 협정 체결 당시 이전 조약에 따라 아직 이행되지 않은 모든 중요한 사항과 관련하여 혼합 위원회에서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그리스-튀르키예 혼합 중재판정부에 회부되어야 한다. 중재인의 판정은 구속력이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었다.4)
참고로 그리스-튀르키예 혼합 중재판정부는 로잔 협정에 의하여 콘스탄티노플에 구성되었으며, 특정 재산, 권리 및 이익의 귀속 또는 회복과 문제된 재산, 권리 및 이익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와 관련된 모든 분쟁을 처리하였다.
1927. 9. 혼합 위원회의 위원들 사이에서 의정서 제4조가 규정하는 중재 회부 조건의 해석과 관련한 논란이 발생하였다.5) 구체적으로 혼합 위원회는 본건 조약에 따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명단 작성과 관련하여 그리스와 튀르키예 위원들 간 이견이 발생하였고 이를 그리스-튀르키예 중재판정부에 회부할 주체와 관련하여, 그리스는 의정서 제4조에 따라 혼합 위원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반면 튀르키예 위원들은 혼합 위원회의 사전 결정이 있음을 전제로 본건 협정 및 의정서의 당사자인 그리스 또는 튀르키예가 회부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6)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혼합 위원회는 1928. 2. 4. 국제연맹 이사회가 상설국제재판소(Permanent Court of International Justice, 이하 “PCIJ”)에 본건과 관련한 권고적 의견을 요청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7) 이에 따라 이사회는 1928. 6. 7. PCIJ에 권고적 의견을 요청하였다.8)
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을 위한 조약을 준수함에 있어 필요한 조치의 실행, 결정, 중재 회부 여부 판단 및 실제 회부 권한 일체는 모두 혼합 위원회가 가진다.9)
그리스-튀르키예 최종 의정서 제4조 및 본건 조약 제12조 등
재판소는 결론 도출에 앞서 혼합 위원회의 구성과 권한을 살펴보았다. 구체적으로, 혼합 위원회는 11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그리스에서 4명, 터키에서 4명, 국제연맹 이사회에서 3명을 임명하고, 총 11명의 위원은 위원회에서 각자 투표권을 행사하며 안건은 다수결에 의하여 채택된다.10)
가. 그리스 측 의견
그리스는 의정서 제4조는 혼합 위원회가 중재인에게 이 문제를 회부할 권리가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혼합 위원회에게 동 권리를 부여하지 않았으므로 혼합 위원회가 중재인에게 이 문제를 회부할 권리가 없다고 하였다. 또한 그리스는 사건에서 중재인이 해당 사건에 대한 관할권이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 혼합 위원회가 예비판정을 통해 해당 쟁점을 해결할 권한이 없다고 언급하였다. 해당 쟁점은 국제법의 기본 원칙에 따라 중재인만이 독점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11)
마지막으로, 그리스는 당사자들이 의정서 제4조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혼합 위원회의 결정 없이도 공동으로 중재에 임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당사자들이 공동으로 중재인에게 해당 문제를 회부하기로 합의하지 못할 경우, 각 당사자는 일방적으로 해당 문제를 중재인에게 회부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12)
나. 튀르키예 측 의견
튀르키예는 혼합 위원회는 의정서 제4조에 따라 그리스-튀르키예 혼합 중재재판부의 의장 앞에서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혼합 위원회가 문제를 단일 중재인에게 회부할 권한을 행사할 수 있으나 당사자들이 중재 진행방법을 결정하게 된다고 밝혔다.
또한, 튀르키예는 그리스-튀르키예 혼합 중재재판부 의장 앞에서의 절차에 의존할 권리는 혼합 위원회가 제4조에 규정된 조건이 충족되었고 자신이 해당 문제를 처리할 능력이 없다고 의결한 이후에만 두 국가가 단일 또는 공동으로 행사할 수 있다고 하였다.13)
다. PCIJ의 의견
PCIJ는 그리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혼합 위원회가 중재 회부 권한을 가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근거로는 1923. 1. 30. 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을 위한 조약에 따르면, 혼합 위원회는 다수결에 의거하여 의사결정을 내리므로 모든 위원은 개인으로서 독자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고,14) 동 조약 제12조가 동 조약의 실행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동 조약이 야기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결정할 수 있는 완전한 권한을 혼합 위원회가 가지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며15), 그리스 측 대리인들도 1923. 7. 24. 로잔에서 그리스 소재 이슬람 교도 재산에 대한 선언에 서명할 때 혼합 위원회가 관련 분쟁에 대한 중재 회부 권한을 가진다는 점에 동의하였고,16) 본건 조약은 제6조 제3항, 제12조 제3항, 제13조 제1항 및 제3항에서 혼합 위원회에 일정한 관할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나아가 제14조 제1항에서 본건 조약 적용에 관한 일반적인 권한도 부여하고 있다는 점17)을 들었다. 이에 더하여 PCIJ는 의정서 제4조가 “오늘 서명된 협정에 의해 위임된 새로운 의무 및 협정 체결 당시 이전 조약에 따라 아직 이행되지 않은 모든 중요한 사항과 관련하여 혼합 위원회에서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그리스-튀르키예 중재판정부에 회부되어야 한다. 중재인의 판정은 구속력이 있다.”라고만 규정하여 누가, 언제, 어떤 조약에 관한 분쟁을 중재에 회부한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점 역시 혼합 위원회의 중재 회부 권한을 뒷받침한다고 보았다.18) 또한 PCIJ는 그리스-튀르키예 중재재판부에 분쟁을 회부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충족되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혼합 위원회의 단독 판단이라는 의견을 밝혔다.19) PCIJ의 의견에 따르면, 이와 같은 해석이 의정서 및 관련 조약의 “정신(spirit)”에 부합한다.20)
혼합 위원회는 1923. 1. 30. 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을 위한 조약 제12조에 따라 특정 동산 또는 부동산의 이전 및 청산을 감독, 촉진할 책임을 부담하고, 이주 및 청산에 관한 규칙의 세부 사항을 결정하는 등 다양한 행정 및 입법 기능을 수행하였다.
나아가 청산 대상 재산, 권리 및 이익에 관련한 특정 분쟁을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사법 기능도 행사하였다. 또한, 로잔 협정 부속서 9 선언에 근거하여 혼합 위원회는 1923. 1. 30. 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을 위한 협약의 적용대상이 아닌 이슬람교도의 재산권에 관한 특정 청구를 처리하였다. 또한 본건 조약에 따라 혼합 위원회는 특정 유형의 부동산 처분을 규제할 권한을 행사하였다.
종합하면, 혼합 위원회는 그리스와 튀르키예 사이에 기 협의된 인구 교환 업무를 촉진하고 이에 부수하여 발생할 수 있는 제반 문제를 원활히 해결하기 위한 포괄적이고도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였다.
본건에서 그리스와 튀르키예 사이에 의정서 제4조의 해석에 관한 다툼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의정서 제4조가 매우 조악하게 작성되었다는 데 있다. 이 조항은 다음과 같다.
의정서 제4조 오늘 서명된 협정에 의해 위임된 새로운 의무 및 협정 체결 당시 이전 조약에 따라 아직 이행되지 않은 모든 중요한 사항과 관련하여 혼합 위원회에서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그리스-튀르키예 중재판정부에 회부되어야 한다. 중재인의 판정은 구속력이 있다. Any questions of principle of importance which may arise in the Mixed Commission in connection with the new duties entrusted to it by the Agreement signed this day and which, when that Agreement was concluded, it was not already discharging in virtue of previous instruments defining its powers, shall be submitted for arbitration to the President of the Greco-Turkish Arbitral Tribunal sitting at Constantinople. The arbitrator's awards shall be binding. |
위 의정서 제4조는 일정한 분쟁을 중재에 의해 해결한다는 중재조항이다. 그러나 동조는 분쟁이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그리스-튀르키예 중재판정부에 회부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중재 회부를 위한 요건, 중재 회부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 및 실제 분쟁을 중재에 회부하는 주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핵심적인 절차가 누락된 것이다.
이러한 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PCIJ는 국제기구의 내재적 권한(implied power)이라는 개념을 동원하는 무리수를 둔다. 구체적으로는 의정서 제4조가 중재 회부 주체 등에 대해 아무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것을 인정하면서도 의정서 제4조와 관련 조약 등을 검토하면 의정서 제4조의 의미는 명확하다든지21), 의정서의 “정신(spirit)”에 비추어 해석을 해야 한다22)는 등 다양한 논거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여러 측면에서 무리한 주장을 포함하고 있다.
당시에는 아직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Vienna Convention on the Law of Treaties, 이하 “VCLT”)가 존재하지 않았으나 여기 포함된 내용이 국제관습법을 체화한 것이므로 PCIJ가 심리하던 당시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규범이었다. 따라서 지금의 VCLT를 기초로 이 권고적 의견을 살펴보아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첫째, VCLT 제31조 제1항에 따르면, 의정서 제4조 해석의 1차적 기준은 동조의 문언 자체의 통상적인 의미(ordinary meaning)이며, 동조의 문맥, 의정서의 대상과 목적을 고려하여야 한다. 그런데 의정서 제4조가 중재 회부 결정권자나 주체에 대해 완전히 침묵하고 있으므로, 이때에는 ‘중재(arbitration)’라는 용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칙적으로 중재절차는 그것이 국제적 절차이든 국내적 절차이든 사적 당사자 간의 절차이든 국가 등 공적 주체가 관여하는 절차이든, 해당 절차의 당사자가 분쟁을 중재에 회부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본건의 경우에도 그리스와 튀르키예 사이에 분쟁이 발생한다면 이들이 분쟁 당사자가 될 것이고 당사자 중 하나 이상이 분쟁을 중재에 회부한다고 보는 것이 더욱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해석이다.
둘째, 만일 ‘중재(arbitration)’의 통상적 의미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의정서 제4조의 공백을 해석한 결과는 아마 ‘의미가 모호하거나 애매한 경우’ 내지 ‘명백히 불투명한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VCLT 제32조에서 정한 바와 같이 해석의 보충적 수단, 즉 조약의 교섭 기록 및 그 체결시의 사정 등에 의존하여야 한다. 그런데 VCLT 제32조가 가리키는 보충적 수단이란 교섭 기록, 체결시의 사정 등과 같이 조약 당사자들의 조약 체결 당시의 진의를 확인하기 위한 외부적 자료들이다. 그런데 본건 의견에서 PCIJ는 이와 같은 ‘보충적 수단’을 탐구하기보다는 곧바로 조약의 “정신(spirit)” 과 같은 주관적인 요소에 의존하여 특별한 추가적 설명없이 곧바로 혼합 위원회의 중재 회부 권한을 인정하고 있다. 이는 국제기구를 조약의 산물이라 보고 해당 조약에서 정한 권리만을 보유한다고 판단하던 PCIJ의 종전의 입장과도 차이가 있다.
셋째, 의정서 제4조의 해석 방법이 논리적이지 못한 것과 별개로, PCIJ의 해석의 결과, 즉 혼합 위원회에 중재 회부 권한을 맡긴 결과가 결국은 현실적인 비효율성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가령, Blanca Montejo는 혼합 위원회가 그 비효율과 기능 장애로 악명이 높았으며 PCIJ가 언급한 내재적 권한을 결국 한 번도 행사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있다.23) Reisman 교수는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PCIJ의 해석이 중재판정부 의장의 권한 남용이라는 희박한 가능성을 막기 위하여 국제적인 마비 상태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하였다.24) 현실적인 부분을 간과한 PCIJ의 권고적 의견이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이다.
이렇듯 본건 의견은 논리적 타당성으로 보나 현실적 결과로 보나 여러 모로 미흡한 부분이 적지 않다. 이러한 경험은 앞으로 국제법원이 관련 사건을 심리함에 있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참고할 만하다.
작성자 안정혜 변호사 | 법무법인(유한) 율촌
최세영 변호사 | 법무법인(유한) 율촌
최호연 변호사 | 법무법인(유한) 율촌
감수자 이재민 교수 |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 본 판례 해설 내용은 작성자와 감수자 개인의 견해로 산업통상자원부의 공식견해와 무관함을 밝힙니다.
1) Interpretation of Greco-Turkish Agreement of Dec. 1st, 1926, Advisory Opinion, 1928 P.C.I.J. (ser. B) No. 16 (Aug. 28), 이하 “본건 의견”.
2) 본건 의견, p. 9.
3) 본건 의견, pp. 14-15.
4) 본건 의견, pp. 19-20.
5) 본건 의견, p. 10.
6) 본건 의견, p. 10.
7) 본건 의견, pp. 1, 5, 10, 12.
8) 본건 의견, pp. 5-6.
9) 본건 의견, p. 27.
10) 본건 의견, pp. 16-17.
11) 본건 의견, pp. 13-14.
12) 본건 의견, p. 14.
13) 본건 의견, p. 13.
14) 본건 의견, p. 17.
15) 본건 의견, pp. 17-18.
16) 본건 의견, pp. 18-19.
17) 본건 의견, p. 19.
18) 본건 의견, pp. 20-21.
19) 본건 의견, p. 21.
20) 본건 의견, p. 24.
21) 본건 의견, p. 20.
22) 본건 의견, p. 24.
23) Blanca Montejo, “Interpretation of the Greco-Turkish Agreement of 1 December 1926, Permanent Court of International Justice, Advisory Opinion, [1926] Publ. PCIJ, Series B, No. 16.”, Judicial Decisions on the Law of International Organizations (2016), pp. 77-79.
24) W. M. Reisman, Collected Courses of The Hague Academy of International Law (1996), pp. 5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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