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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ser and Energía Solar v. Spain (ICSID Case No. ARB/13/36) 본문

Eiser and Energía Solar v. Spain (ICSID Case No. ARB/13/36)

투자분쟁 판례해설 2022. 9. 14. 16:27

 

Eiser v. Spain (decision on annulment)_판례평석.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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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건 정보

 

가. 기본 정보

청구인 (취소 피신청인) Eiser Infrastructure Ltd. (영국), Energia Solar
Luxembourg S.a.r.L. (룩셈부르크)
피청구국 (취소 신청인) 스페인
근거 투자협정 에너지헌장조약 (1998. 4.)
적용 중재규칙 ICSID 협약, ICSID 중재규칙
소가 EUR 256,000,000
주요 절차 (2013. 12. 13.) 중재신청서 접수
(2014. 07. 08.) 중재판정부 구성 완료
(2017. 05. 04.) 최종 판정 선고
(2017. 07. 28.) 취소신청 접수
(2017. 10. 23.) 취소위원회 구성 완료
(2020. 06. 11.) 취소 결정 선고
(2021. 07. 29.) 취소 후 2차 중재 제기(resubmission)
(2022. 05. 16.) 2차 중재판정부 구성 완료

 

나. 중재판정부 정보

 

(1) 원 중재판정부

청구인 지명 Stanimir Alexandrov (男 / 불가리아)
Alexandrov 중재인은 불가리아 외교부 차관으로 재직한 후 미국의 대형로펌인 Sidley Austin에서 국제중재팀의 공동팀장을 맡은 바 있다. Alexandrov 중재인은 상사 중재와 투자중재 양쪽에서 모두 명망이 높은 중재인으로, 투자중재에서는 총 66건의 사건에서 중재인으로 선정되어 전체 2위의 사건 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 중에서는 58건이 청구인 측 지명 중재인으로 지명된 경우였고, 7건이 의장중재인으로 선정된 경우였던 만큼, Alexandrov 중재인은 확연한 ‘청구인 측’ 중재인으로 분류된다고 할 수 있다.

Alexandrov 중재인은 최근 Sidley Austin을 퇴사하고 독립중재인으로 개업하였는데, 개업과 함께 수요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중이다. Sidley Austin 재직 당시에 그는 대한민국의 1호 투자중재 사건인 소위 ‘론스타 사건’에서 론스타 측 공동대리인을 맡아 변론에 적극 개입한 바가 있는 등, 대한민국과의 인연도 있다고 할 수 있다.
피청구국 지명 Campbell McLachlan 교수 (男 / 뉴질랜드)
McLachlan 교수는 호주 빅토리아 대학교의 국제공법 교수이자, 변호사(barrister)이기도 하다. 총 20여건의 투자중재 경험이 있으며, 그 중 10건이 의장중재인, 6건이 피청구국 지명 중재인, 3건이 ICSID 취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것이다. 의장중재인으로서의 경험이 더 많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국제공법 배경을 지니고 있으며 국제공법에 대한 입장이 전통적·보수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인지 피청구국 측 중재인으로도 선호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장중재인 John Crook 교수 (男 / 미국)
Crook 교수는 조지워싱턴대학교 로스쿨의 국제중재 교수로, NATO의 행정재판소 판사로 재직하고 있기도 하다. Crook 교수는 주로 투자중재와 국가간 중재사건을 담당하고 있는데, 투자중재에서는 총 11건의 사건을 담당하여 그 중 7건은 의장중재인, 4건은 피청구국 지명 중재인으로 활동하였다.

* 2022. 7. 현재 기준


(2) ICSID 취소위원회

배석 취소위원회 위원 Dominique Hascher 파기원 판사 (男 / 프랑스)
배석 취소위원회 위원 Makhdoom Ali Khan (男 / 파키스탄)
취소위원회 위원장 Ricardo Ramirez Hernandez 교수 (男 / 멕시코)

 
다. 사건 결과


(1) 원 중재판정

결과 청구인 일부 승소 (EUR 128,000,000 손해배상 인정)
소송 비용 각자 부담

  
(2) 취소위원회 결정

결과 판정 전부 취소
소송 비용 청구인 전부 부담

  

2. 사건 개요


가. 원 중재판정

 

청구인들은 영국 국적의 Eiser Infrastructure Ltd.와 룩셈부르크 국적의 Energia Solar Luxembourg S.a.r.L.로, 에너지와 인프라 관련 섹터에 주로 투자를 하는 펀드이다. 청구인들은 속칭 ‘EISER 그룹’에 속한 단체들로, 청구인 1은 펀드의 업무집행사원에 해당하고, 청구인 2는 펀드의 구성원인 무한책임사원들로부터 투자금을 받아 상위실체로 이전하는 관문 역할을 하는 중간실체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피청구국인 스페인은 EU의 에너지 관련 정책에 부합하도록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전기발전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국내법제를 정비해오고 있었다.


스페인은 신재생에너지, 그 중에서도 특히 태양광 발전의 일종인 집광형 태양열 발전(거울 등을 통해 태양광을 한 군데로 집중시켜 그 열로 물을 끓이고 그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을 장려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2007년 5월에 국왕령 661/2007호를 발령하였다. 국왕령 661/2007호는 집광형 태양열 발전을 통한 전기생산자들에 대하여 조세혜택을 포함한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는데, (1) 생산자들이 매해 적용될 세율을 고정세율과 시장가격 대비 우대세율 중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2) 해당 세율을 부담하는 경우 생산된 전기는 우선구매대상이 되며; (3) 생산량이 많을 수록 세율이 낮아지는 세율구조가 전기생산설비의 운용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적용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추후에 국왕령 661/2007호와 다른 내용의 조세정책이 도입되는 경우, 그러한 변경사항은 동 국왕령의 적용대상인 기존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청구인들은 국왕령 661/2007호가 도입되자, 이를 바탕으로 스페인에 대규모의 집광형 태양열 발전 단지의 건설과 운영에 투자하게 되었다.


그러나 스페인의 재정적자가 악화되고 특히 세입이 크게 줄어들게 되자, 스페인의 새로운 정권은 2012년부터 관련 법령을 대대적으로 개정하기에 이른다. 개정사항으로는 기존 국왕령 661/2007호에서 인정되었던 신재생에너지 생산자들의 연간 세율선택권과 생산량에 연동되어 있었던 세율 등 기타 조세우대혜택을 폐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개정사항은 신재생에너지 생산자들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혔으며, 청구인들이 투자한 집광형 태양열 발전 단지들도 매출 66%가 감소하는 타격을 입었다.


이에 청구인들은 스페인의 조세정책 변경이 에너지헌장조약에 규정된 공정공평 대우의무(제10조)를 위반하였고, 수용금지의무(제13조)에 어긋나는 간접수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투자중재를 제기하였다. 이에 스페인은 공정공평대우의무 위반이나 불법 간접수용이 없었다고 반박하였으며, 그에 앞서 다음과 같이 여러가지의 관할권 관련 항변을 제출하였다: (1) 당사자들이 모두 EU 회원국이라는 점에 비추어 EU법에 따라 EU내 분쟁(intraEU dispute)은 EU법에 의해 해결되어야 하므로 중재판정부에 관할권이 없음; (2) 청구인들은 각각 펀드의 업무집행사원과 중간실체에 불과하고, 스페인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금을 부담한 자들이 아니므로, 에너지헌장조약상 보호대상인 ‘투자’를 하지 않았음; (3) 청구인들의 청구는 국제법상 인정되지 않는 주주대표소송의 실질을 가지고 있음; (4) 에너지헌장조약은 조세정책에 관한 청구에 적용 되지 않음; (5) 에너지헌장협약상 조세조치가 수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분쟁은 먼저 투자유치국의 과세당국에 먼저 행정심판을 제기하여야 함; (6) 청구인들은 분쟁해결조항의 냉각기간조항을 성실히 준수하지 않았음.


중재판정부는 에너지헌장조약은 조세정책에 대해 적용되지 않으므로, 스페인의 적극적인 조세정책에 해당한다고 판단된 일부 조치들에 국한하여 관할권이 없다고 판단하여 일부 각하하였다. 그리고 관할권이 인정된 나머지 청구들에 대해서는 본안 단계에서 스페인이 청구인들에 대해 공정공평대우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판정하였다. 다만, 간접수용 관련 청구는 소송경제를 이유로 따로 판단하지 않았다.


나. 취소신청의 배경사실

 

청구인들은 스페인의 조치가 에너지헌장조약을 위반하였고, 그로 인해 EUR 256,000,000의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청구인들은 손해의 입증을 위해 각종 사실관련 증거자료 외에 손해산정 전문가의 전문가보고서를 함께 제출하였다. 청구인들이 선임한 손해산정 전문가는 The Brattle Group (“브래틀”)이라는 경제 컨설팅업체 중 Carlos Lapuerta가 이끄는 자문팀이었다. Carlos Lapuerta는 총 4차례의 전문가보고서(손해산정 관련 2건, 스페인의 태양열 발전 관련 규제 체계 분석 관련 2건)를 중재판정부에 제출하였고, 심리기일에서 전문가증인으로 증언도 하였다.


모든 절차가 완료된 후, 중재판정부는 소가의 절반에 해당하는 EUR 128,000,000의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취지로 청구인 일부 승소판정을 내렸고, 그 과정에서 Carlos Lapuerta가 제출한 손해산정 보고서의 내용을 상당 부분 원용하였다.


스페인은 판정이 선고된 이후 청구인 지명 중재인인 Stanimir Alexandrov와 청구인의 손해산정 전문가인 브래틀, 그리고 팀장이자 전문가증인인 Carlos Lapuerta 간의 밀접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음을 주장하였다. 스페인에 따르면 Alexandrov 중재인이 Sidley Austin의 국제중재팀에서 15년을 재직하는 과정에서 Sidley Austin 국제중재팀은 9건의 투자중재 사건(그 중 8건이 ICSID 사건이었음)과 다수의 상사중재 사건에서 브래틀을 손해산정 전문가로 선정하였고, 그 중 4건에서 Carlos Lapuerta가 전문가증인으로 활동한 바 있다. 또한 본건의 원 중재절차가 아직 계속 중이던 상황에서 Alexandrov 중재인은 최소 두 건의 투자중재 사건1)에서 대리인으로서 브래틀 및 Carlos Lapuerta와 협업을 한 바 있다. 그 외에도 Alexandrov 중재인은 브래틀이 청구인 측 손해산정 전문가로 선정된 총 4건의 투자중재 사건에서2) 청구인 측 지명 중재인으로 임명된 바 있다. 특히 위 4건 중 하나인 SolEs Badajoz v. Spain 사건에서는 Alexandrov 중재인이 (이미 종결된) 두 건의 다른 투자중재 사건에서 대리인으로서 브래틀과 협업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자 스페인이 Alexandrov 중재인에 대해 제척신청을 하였는데, 나머지 2인의 중재인들이 이것이 제척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해 의견이 나뉜 관계로 제척신청이 기각된 일이 있었다.3)


그러나 위와 같은 사정은 본건 원 중재절차 과정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았고, Alexandrov 중재인 본인도 이와 관련된 사실을 따로 공개하지 않았다. 스페인은 2017년에 다른 투자중재 사건에서 Alexandrov 중재인에 대한 제척신청이 제기되어 그 내용이 기사화 되면서 비로소 Alexandrov 중재인의 중립성과 독립성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인식하였다는 입장이었다.


스페인은 이와 같은 사정이 중재판정부의 공정성과 중재인의 독립성에 반하는 중대한 사유라고 주장하며 이를 바탕으로 ICSID 협약 제52조에 기한 중재판정 취소신청을 하였다.


3. 주요 쟁점

 

가. 중재판정부의 부적절한 구성 여부 (ICSID 협약 제52조 제1항 가.호)

 

(1) 당사자들의 주장 (paras. 45-90)

 

스페인은 상술한 Alexandrov 중재인과 관련된 배경사실을 살펴보았을 때, Alexandrov 중재인이 포함된 본건 원 중재절차의 중재판정부는 ICSID 협약 제52조 제1항에 규정된 취소사유 중 가.호 사유인 “적절히 구성되지 않은 경우(improper constitution of the Tribunal)”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스페인에 의하면 (1) 중재인의 중립성과 독립성은 중재인으로서의 기본 자격요건일 뿐만 아니라 중재재판의 가장 기본적인 요청으로, 이러한 자격요건이 결여된 중재인이 중재판정부에 포함된 것은 그 자체로 구성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못한 것임; (2) 중재절차 도중에는 중재인에 대해 기피신청을 할 수 있지만 최종 판정이 선고되어 절차가 종료된 시점에서 중재인의 중립성과 독립성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사유가 밝혀진 경우에는 당연히 이를 이유로 취소신청을 할 수 있음; (3) 중립성과 독립성의 존부에 대한 판단기준은 실제로 해당 중재인이 절차운영과정에서 편향된 행위를 했을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제3자가 보기에 편향적이라는 외관을 명백히 갖춘’ 경우이면 족한 것인데 본건에서 Alexandrov 중재인은 이러한 요건을 충족시킴; (4) 스페인은 Alexandrov 중재인이 이러한 이해충돌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공개하지 않은 것이 특히 ‘편향성의 외관’ 형성에 크게 기여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스페인은 ‘중재판정부가 적절히 구성되지 않은 경우’라는 취소사유가 단순히 중재판정부 구성 과정에서의 절차적 흠결이 있는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며, 중재인의 제척사유 존부에 관한 사실이 중재절차 종료 후에 밝혀진 경우에는 취소위원회가 자체적으로 중재인의 제척 필요성에 관한 심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청구인들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하였다: (1) 중재판정부 구성에 절차적인 흠결이 있는 경우에만 취소신청을 할 수 있을 뿐, 본건과 같이 절차종료 후에 제척사유가 밝혀진 경우에는 ICSID 협약 제51조 소정의 중재판정의 개정(amendment)을 신청하는 방식으로만 다툴 수 있음; (2) Alexandrov 중재인이 브래틀과 깊은 인연이 있다는 사실은 공개되어 있는 언론기사나 중재절차 문서들을 통해 이미 공지의 사실이었으므로, 스페인은 Alexandrov 중재인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문제 삼을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고 보아야 함; (3) 극도로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는 중재판정 취소사유에 해당할 정도로 Alexandrov 중재인과 브래틀 및 Carlos Lapuerta 간의 이해충돌 문제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음; (4) 중재판정 취소를 위해서는 중재인의 편향된 행위가 있었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한데, 그러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음


특히 청구인들은 스페인이 문제삼고 있는 대부분의 경우가 Alexandrov 중재인이 직접 대리인이나 중재인으로 활동하면서 브래틀이 개입된 사례가 아니라, 단지 Alexandrov 중재인이 소속되어 있던 로펌인 Sidley Austin이 다른 국제중재 사건에서 브래틀을 선임한 경우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2) 취소위원회의 판단 (paras. 156-229)


취소위원회는 먼저 ICSID 협약 제52조 제1항 가.호 사유인 ‘중재판정부가 적절히 구성되지 않은 경우’가 단순히 중재판정부의 최초 구성에 절차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31조에 규정된 조약해석의 일반원칙에 따라 동조항을 해석해보면, 중재인의 기본 자격요건인 중립성과 독립성을 결여한 중재인이 중재판정부 최초 구성 당시 포함되는 것뿐만 아니라, 중재판정부의 구성원으로 계속 활동하는 것 자체도 취소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ICSID 협약 제51조에 규정된 중재판정문의 개정(amendment) 절차의 경우에는 판정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주요한 사실관계의 새로운 발견이 있는 경우에 관한 것으로, 중재판정의 실체적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성격의 사실이 발견되는 경우를 예정한 절차에 해당하여 본건과 같이 중재인의 제척사유가 뒤늦게 발견된 경우에 활용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취소위원회는 본건에서 Alexandrov 중재인의 중립성과 독립성에 관한 문제가 중재판정의 취소에 이를 정도인지를 판단함에 있어 적용되어야 할 기준은 원중재판정 절차에서 적용되었어야 할 제척(disqualification)의 기준과 동일하게 ‘합리적인 제3자가 보았을 때 명백한 중립성과 독립성의 결여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보았다.


이러한 기준을 바탕으로, 취소위원회는 Alexandrov 중재인의 이해충돌 문제가 중재판정의 취소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고 판시하였다. 취소위원회는 특히 Alexandrov 중재인과 Carlos Lapuerta가 이미 4건의 중재 사건에서 같은 당사자 측의 대리인과 전문가증인으로 활동한 바가 있고, 그 중 2건의 사건의 경우에는 본건의 원 중재절차가 계속 중이었으며, 나아가 다른 사건에서 브래틀의 다른 전문가팀과도 동시에 협업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취소위원회는 Alexandrov 중재인과 같이 어떤 사건에서는 중재인으로, 어떤 사건에서는 대리인으로 활동하며 여러 역할을 수행하는 소위 ‘double-hatting’이 있는 경우에는 특히 이해충돌 문제에 민감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으며, 중재인 본인의 이해충돌 가능성 공개의무가 더욱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한편, 취소위원회는 스페인이 본건 원 중재절차에서 Alexandrov 중재인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문제 삼을 권리를 포기했다고 하기 위해서는 스페인이 제척사유의 존재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어야’ 한다고 보았으나, 단지 단서가 될만한 사실관계가 언론기사나 공개된 국제중재 자료들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이러한 기준이 충족되었다고 보기 힘들다고 판시하였다.


나. 근본적 절차규칙의 중대한 위반 (ICSID 협약 제52조 제1항 라.호)

 

(1) 당사자들의 주장 (paras. 111-130)

 

스페인은 ‘근본적 절차규칙의 중대한 위반’을 이유로 중재판정이 취소되기 위해서는 근본적 절차규칙의 위반이 있으며, 그로 인해 중재판정부의 판단 결과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으면 족하고, 반드시 실제로 실질적인 영향이 있었다는 점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스페인은 앞서 언급된 Alexandrov 중재인과 브래틀 및 Carlos Lapuerta 간의 이해충돌 문제가 (1) 중재판정부의 중립성과 독립성 및 (2) 공정한 재판접근권과 공평한 대우를 받을 당사자의 권리를 침해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스페인은 후자와 관련하여서는 중재판정부가 신규 서증 및 법률문헌증거 제출 신청과 관련하여 양 당사자를 차별적으로 대우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반대로 청구인들은 근본적 절차규칙의 위반으로 인해 중재판정부가 실제로 ‘상당히 다른 결과’에 이르렀음을 증명하여야 취소사유가 인정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청구인들은 Alexandrov 중재인과 브래틀 및 Carlos Lapuerta 간의 이해충돌 문제가 중재판정의 취소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것이 아니었고, 그로 인해 중재판정에 실질적인 영향이 있었음이 증명되지도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청구인들은 중재판정부가 신규 서증 및 법률문헌증거 제출 신청과 관련하여 양측에 다른 결론을 내린 것은 구체적인 사실관계의 차이 때문일 뿐 부당한 차별대우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2) 취소위원회의 판단 (paras. 238-256)


취소위원회는 먼저 중재인과 중재판정부의 중립성과 독립성의 보장은 투자중재제도에서 근본적인 절차적 보장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취소위원회는 ‘근본적 절차규칙의 중대한 위반’을 이유로 중재판정이 취소되기 위해서는 근본적 절차규칙의 위반이 있고, 그로 인해 중재판정부의 판단 결과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으면 족하다는 입장을 채택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취소위원회는 본건 원 중재절차에서 당사자들은 중재인의 제척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변론을 진행하였고, Alexandrov 중재인을 제외한 나머지 중재인 2인 역시 동일한 전제 하에 당사자들의 변론과 증거자료를 검토하여 심의하고 판정을 선고하였으므로, 당연히 중재판정의 결과가 달라졌을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취소위원회는 이러한 맥락에서 특히 중재판 정부가 손해를 인정함에 있어 결국 Carlos Lapuerta가 이끄는 브래틀 팀이 제안한 손해산정 모델을 활용하였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에 따라 취소위원회는 ‘근본적 절차규칙의 중대한 위반’을 이유로 하는 취소사유도 존재한다고 판단하였다.

 

다. 명백한 권한의 유월 (ICSID 협약 제52조 제1항 나.호) 및 이유 불비 (ICSID 협약 제52조 제1항 마.호)


(1) 당사자들의 주장 (paras. 91-110, 131-142)


스페인은 중재판정부가 판정문의 판정 이유 부분에서 청구인의 청구 중 일부분에 관해 관할권이 없다거나 에너지헌장조약의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손해산정 부분에서는 해당 부분들이 에너지헌장조약의 위반으로 인정된 것임을 전제로 계산하였으므로 권한 유월이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구체적으로 스페인은 중재판정부가 스페인의 자유로운 규제권한을 인정하고, 국왕령 661/2007이 국제투자법상 국내규제 환경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위 ‘안정화’에 대한 보장을 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012년부터 시작된 일련의 법제 변경이 공정공평대우의무 위반이라고 판시하며 이를 바탕으로 손해를 인정한 것에 대해 권한유월을 주장하였다. 스페인은 동일한 이유에서 중재판정부가 판정이유를 정확히 설시하지 않아 중재판정문이 이유를 불비한 것이라고도 주장하였다.


청구인들은 먼저 ‘중재판정부의 명백한 권한의 유월(Tribunal’s manifest excess of its powers)’에 해당하여 중재판정이 취소가 되는 경우는 중재판정부의 관할 판단에 문제가 있거나, 준거법의 판단에 오류가 있는 경우에 국한되며, 단순한 법의 오적용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즉, 스페인이 중재판정부의 관할 판단에 오류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준거법의 판단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주장 자체로 성립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같은 맥락에서 청구인들은 중재판정부가 충실히 판정 이유를 설시하였다고 주장하였다.


(2) 취소위원회의 판단 (para. 256)


취소위원회는 당사자들의 위 주장들에 관하여 따로 판단하지 않았다. 이미 앞서 검토한 두 가지 사유(중재판정부의 부적절한 구성, 근본적 절차규칙의 중대한 위반)로 취소 결정을 하였기 때문에 소송경제상 나머지 부분을 검토할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4. 평가 및 해설


투자중재에서는 중재인들의 중립성과 독립성에 관한 소양을 상당히 존중하는 편이기 때문에, 이해충돌 문제로 인해 중재인들이 제척 당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할 수 없으며, 이해충돌의 문제로 인해 중재판정이 취소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할 수 있다. 본건은 중재의 당사자나 그 대리인들과의 이해충돌 문제가 아닌 전문가증인과의 이해충돌 문제로 중재판정이 취소가 된 상당히 드문 사례에 해당한다. 이로 인하여 화제가 된 판정이기는 하나, 법리적으로는 충실히 작성된 취소신청 결정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중재 실무계와 더불어 투자중재는 재판부를 구성할 인원들이 한정적이라는 한계가 존재한다. 가장 수요가 많은 중재인 상위 10명이 전체 투자중재 사건 1200여건 중 절반에 해당하는 600건을 담당할 정도이다.4)  그리고 많은 경우 이들 중재인들이 다른 투자중재 사건들에서 대리인으로 활동하거나, 고문이나 전문가로 활동하게 된다. 소위 ‘double-hatting’이라고 칭해지는 현상 속에서 투자 중재계의 중재인들은 필연적으로 다양한 이해충돌의 가능성이 발생하게 된다.


본 건은 이해충돌이 전문가증인과의 관계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히며 여러 실무가들과 중재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게 한 의미 깊은 사건이라고 할 것이다.


투자중재에서는 투자유치국에 의한 실체법적인 위반 인정 여부도 중요하지만, 당사자의 실질적인 구제 차원에서는 손해의 산정 문제도 중요한 쟁점에 해당한다. 게다가 투자중재 사건들은 통상적으로 방대하고 복잡한 사실관계가 개입되기 때문에, 숙련된 중재인들 입장에서도 투자유치국의 국제법 위반행위와 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실무적으로 투자중재의 양측 당사자들이 각각 손해산정 전문가(quantum expert)를 고용하여 손해산정 모델과 그 결과를 계산해내고, 상대방 전문가의 모델을 반박하며, 중재판정부에게 그 내용을 설명하는 것은 일상적인 중재절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손해산정 문제 외에도 각 사건의 특성상 고도로 전문화된 분야가 핵심 쟁점과 연관되어 있는 경우에는 중재판정부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해당 분야의 전문가증인을 선임하는 경우도 다수 존재한다.


우리나라도 피소된 투자중재 사건에서 거의 대부분의 경우 손해산정 전문가를 선정하고 있는바, Elliott v. Korea 사건과 Mason v. Korea 사건들에서는 본건에서 문제된 컨설턴트 회사인 브래틀(The Brattle Group)을 손해산정 전문가로 선정한 바 있다.5) 참고로, 브래틀은 투자중재 사건에서 손해산정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소수의 전문 컨설팅 업체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 역시 투자중재 사건에서 최선의 대응을 하고자 검증된 중재인들과 검증된 대리인단, 검증된 전문가증인들을 활용하고자 한다. 예컨대 대한민국이 당사자인 사건들에서 대한민국 측 지명 중재인은 Brigitte Stern, Christopher Thomas, Pierre Mayer, Loretta Malintoppi, Donald McRae 등 명망과 경륜이 있는 중재인들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정부 대리인 또한 국내외 대형로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중재인들과 대형로펌들의 수가 제한적이라는 측면에서 이해충돌의 문제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 UNCITRAL 제3작업반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ISDS 제도개선의 맥락에서도 이와 같은 double-hatting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이해충돌 문제의 억제와 대응이 주요한 쟁점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6) 동 작업반에서 EU 측이 제안하고 있는 상설투자법원안이 이해충돌 문제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7) 또한 UNCITRAL 제3작업반과 ICSID 사무국은 중재인들의 윤리의무와 고지의무 강화를 통해 이해충돌 문제를 개선해보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양 기관이 공동으로 중재인윤리장전 초안을 작성하여 지속적인 개선작업을 하고 있다.8) 다만, 아직 문안의 최종 확정과 정식채택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끝/

 

 

작성자: 법무법인(유) 광장, 우한얼 변호사, 권영호 변호사, 정기창 외국변호사


1) Pluspetrol Peru Corporation S.A. and others v. Perupetro S.A. (ICSID Case No. ARB/12/28); Bear Creek Mining Corporation v. Republic of Peru (ICSID Case No. ARB/14/21). 
2) SolEs Badajoz G.m.b.H. v. Kingdom of Spain (ICSID Case No. ARB/15/38); Tethyan Copper Company Pty Ltd. v. Islamic Republic of Pakistan (ICSID Case No. ARB/12/1); Blusun S.A., Jean-Pierre Lecorcier and Micheal Stein v. Italian Republic (ICSID Case No. ARB/14/3); Ioan Micula, Viorel Micula, S.C. European Food S.A., S.C. Starmill S.R.L. and S.C. Multipack S.R.L. v. Romania (ICSID Case No. ARB/05/20)  
3) Eiser Infrastructure Ltd. and Energia Solar Luxembourg S.a.r.L. v. Kingdom of Spain (ICSID Case No.ARB/13/36), Decision on Annulment, para. 57.  

4) UNCTAD, “Investment Dispute Settlement Navigator” 2022 상반기 통계 기준(글씨체) <available at = https://investmentpolicy.unctad.org/investment-dispute-settlement (last visited 12 July 2022)>  

5) Elliott Associates LP v. The Republic of Korea (PCA Case No. 2018-51) 및 Mason Capital LP and Mason Management LLC v. The Republic of Korea (PCA Case No. 2018-55)건의 공개된 준비서면들을 살펴보면 대한민국 측의 손해산정 전문가로 선정된 James Dow 교수가 The Brattle Group 소속인 점을 알 수 있다.  
6) UNCITRAL, “Draft report of Working Group III (ISDS Reform) on the work of its thirty-sixth session”, UN Doc. A/CN.9/964 (6 November 2018), pp. 11-13.  
7) 현재의 투자중재 시스템이 아니라 여러 국가들이 다자조약 체결을 통해 투자분쟁의 해결방식으로 전담·전업 판사를 둔 전문상설법원을 설치하자는 주장이다. UNCITRAL Secretariat Note, “Possible reform of 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 Standing multilateral mechanism: selection and appointment of ISDS tribunal members and related matters” 참조. 
8) UNCITRAL & ICSID, “Draft Code of Conduct for Adjudicators in International Investment Disputes: Version Three” (Septembe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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